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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24. 2021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착각

부끄러움과 그렇지 않음 사이에서 흔들리고 또 흔들릴 것이다.

나는 출근할 때마다 아이들 방을 살핀다.

2층 침대 각 층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자세는 정갈하지 않다. 금방이라도 달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자세나, 배를 훤히 드러낸 모습은 아이들의 지금 그 나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혹여라도 자세가 흐트러져 어디가 아프진 않을까 자세를 바로 해주고, 배가 차진 않을까 이불을 덮어 준다.

아이들에게 많은 걸 줄 순 없어도 편히 잘 수 있는 포근함만큼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고 지켜내 주고 싶다. 나는 그 포근함이 훗날 포근하지 않은 세상과 아이들이 맞설 때 그나마의 용기와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와 동시에 마음에 떠오르는 다짐 하나.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말아야지...'


그러나, 그 벅찬 의식을 치르고 나선 나의 하루는 온종일이 부끄럽다.

먹고살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야 하는 이 세상에서, 내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러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엔 얻을 수 있는 것보단, 얻지 못하고 잃을 게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두려움이 되어 나는 스스로 위축한다. 부끄러운 삶을 살아도 제법 어색하지가 않은 이유다. 부끄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하루를 버텨내기에 급급하다.


삶은 부끄럽지 않으려 할수록, 더 부끄러워지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곧으면 부러지고, 휘지 않으면 꺾인다. 부러지지 않으려, 꺾이지 않으려 하는 발버둥은 더 이상 내게 고상함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철없는 젊은 날의 객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부끄러운 삶도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내 삶이 부끄럽다고 느낀 건, 어쩌면 부러지지 않으려는 객기와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착각의 합작품이 아닐까.


거대한 세상에 잠시 무릎 꿇었다고 해서, 남들이 이룬 걸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부끄러운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출근길에 아이들의 볼을 어루만지고, 이불을 덮어줄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있다면, 나는 좀 부끄럽게 살아도 상관없다.


부끄러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부끄럽게 살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온다.


부끄럽지 않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끄러운 나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무엇과 비교하여 부끄러운가.

나는 누구와 비교하여 부끄러운가.


생각해보니, 그다지 부끄럽지도 않고 또 그다지 부끄럽지 않지도 않다.


아마도 나는 그렇게, 부끄러움과 그렇지 않음 사이에서 흔들리고 또 흔들릴 것이다.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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