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해내는 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May 05. 2021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욕망이라는 전차'를 운전하고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야 하는데요. 그런 다음 '묘지'란 전차로 갈아타야 하고... 여섯 정거장을 가면 '엘리시안 필즈'라던데요."

-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주인공 블랑쉬의 첫 대사  -


미국의 유명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희곡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영화 '욕망이라는 전차'는 1951년 개봉되었다.

유명 배우 '비비언 리'가 주연을 맡았고,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에 12개 부문 추천되어 4개 부문에서 수상을 거머쥐었다. 


영화 제목이 강렬해서일까, 나는 '욕망'이란 말을 들으면 이 영화 제목부터 떠오른다.


영화의 결말은 파국이다.

욕망에 사로잡혀,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몰두하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불행을 안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실, 영화의 결말은 첫 대사에 이미 복선으로 깔려 있었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타고, 그다음 갈아타야 하는 역의 이름이 바로 '묘지'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욕망'은 좋지 않은 것인가?

영화 주인공들을 파멸로 이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욕구' 그리고 '욕망'


사실, '욕망'이란 말 자체에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니다.

어감은 다소 부정적 일지 몰라도, 한자 뜻 그대로를 보면 '하고자 하는 것을 바란다'란 의미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욕구'가 있다. 이 또한 '하고자 하는 것을 구한다'란 의미로 큰 차이점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영어로 그 둘을 살펴보면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욕구'는 통상 'Need'로 번역한다. 동시에, '욕망'은 'Desire'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의 원 제목도 'A Streetcar Named Desire'다. 


'욕구'는 생리적인 충동이라 할 수 있다.

'욕구'는 그 누구도 마다할 수 없다. '수면욕'과 '식욕'이 좋은 예다. 이건 참을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선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배하면 '욕망'은 생겨난 욕구를 이루기 위한 마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욕'이라는 '욕구'가 생겨났다면, 이것을 바라는 '욕망'은 밥과 고기 또는 라면이라는 이미지를 머리와 마음에 떠올리고 실제로 그것들을 추구하려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 제목을 따라 비유를 해보자면, '욕구'라는 레일이 깔리면 '욕망'이라는 전차는 그 레일을 따라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욕구'가 생기는 건 잘못이 아니다.

'식욕'도, '수면욕'도, '성욕'도, '배변욕'도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도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욕구를 어떻게 현실화시키느냐는 '욕망이라는 전차'를 어떻게 운전해 가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내게 된다.


결국, '욕구'와 '욕망'이 우리를 행동하게 한다


즉,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욕망이라는 전차'를 운전하고 있다.

우리가 지난날 해온 모든 행동과 선택들은 우리에게 생겨난 욕구나 욕망의 부족분을 채우려 하거나, 그것을 넘어서서 더 가지려 했던 마음의 결과다.


미국의 시인인 스탠리 쿠니츠는 '삶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첫째도 욕망, 둘째도 욕망, 셋째도 욕망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 우리네 사회는 개인의 욕구와 욕망을 억압하고 드러내는 걸 터부시 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욕구와 욕망들은 모든 시스템을 뚫고 나오게 되어있다. 오히려, 이제는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스스럼없이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를 알아챈 여러 기업들은 이미 개개인의 욕구와 욕망을 타깃 한 마케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를 샀다면, 내 마음속에 어떤 바람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찰리 채플린 또한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는 말을 남겼다.

"왜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는가? 인생은 욕망이지 의미가 아니다."

- 찰리 채플린 -


사람을 결국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과 지난날 우리가 왜 그토록 힘겹게 살아왔는지를 명료하게 나타내 주는 한 문장이다.

결국 각자의 욕구와 욕망을 추구하고 실현하기 위해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 와중에 생겨나는 것이 의미이지, 사람은 의미만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란 뜻이다. 사회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타인 또는 가족과의 갈등이 생겨나는 이유도 각자의 욕구와 욕망이 충돌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


다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욕구'로 깔아 놓은 레일을 달리는 '욕망이라는 전차'를 운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이며, 우리가 생각하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원동력이다.




오스트리아 정신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개인심리학'을 주창했다.

그는 개인은 나누어질 수 없는 전체로서 사회 내에서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바로 '자신이 설정한 목표'다. 

아들러는 이 목표를 수립하는 근원을 '열등감'으로 풀이한다. 인간은 열등감을 극복하여 자기완성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하고, 결핍을 채워가며 오히려 성장하며 열등감을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열등감'은 왜 생기는 걸까?

바로, 사람은 우월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각각의 나누어질 수 없는 전체는 오늘도 움직이고 있고, 또 무언가를 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이루었을까?

아니면, 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 패배감을 맛보고 있을까?


혹시. 이루고, 이루지 못한 것보다 더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무언가를 이루고 허탈해하거나, 이뤄봤자 나를 위한 게 아닌 것에 힘을 들이고 있거나 하면서 말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더불어, 그 안에 있는 나의 '욕구'와 '욕망'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충동적인 마음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나의 마음과 대화하면서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고 싶은지에 대해 나눠야 한다.


지금 나는 어떤 레일을 깔고 있는가?

지금 나는 어느 방향으로 전차를 운전해 가고 있는가?


욕망이라는 전차의 다음 역은 과연 어디인 걸까?

끊임없이 나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묘지'는 종착역이 되어야지, 바로 다음 역이 되면 안 되니까.




[글쓰기 강의 + 함께 쓰고 출판하기]

스테르담 글쓰기 클래스(쓰기+출간)


[글쓰기 시작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

탈잉 글쓰기 클래스(VOD)

탈잉 글쓰기 클래스(오프라인/줌라이브)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에듀 캐스트 직장내공 강의 (VOD)


[종합 정보 모음]

스테르담 저서 모음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열정'과 '고통'은 함께 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