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해내는 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May 04. 2021

'열정'과 '고통'은 함께 온다.

열정은 한 번에 타오르는 화염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불씨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고,
'기회' 속에 '위기'가 있다.


'위기(危機)'와 '기회(機會)'는 함께 온다고 한다.

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성취와 성장을 얻어낼 수 있다는 뜻이 배어있다. 위기는 피하는 것이 좋겠지만 기회는 놓치지 말고 잡아야 하는데, 위기를 피하면 기회도 없다는 게 삶의 아이러니다. 어려움을 이겨낸 위인들이나, 결핍을 메꾸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네 모습 그리고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투자 원리를 보면 그 특성이 잘 이해된다.


반대로, 기회라고 믿었던 것에서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빛의 화가 램브란트는 '야경'이라는 그림으로 유명해졌지만, 균등하지 않은 빛의 배분으로 귀족들의 항의를 받아 초라한 노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더불어, 복권이나 일확천금의 기회를 얻은 사람들 중에는 초심을 잃고 파산을 맞이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위기' 속에 '기회'가 있고, '기회' 속에 '위기'가 있다.

두 단어의 공통된 '기(베틀)'라는 글자를 곱씹어보면 더욱더 그 뜻이 분명해진다. 위태로움을 잘 짜면 오히려 기회가 되고, 잘 짜인 틀이라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게 그 뜻이다.


우리는 '위기'와 '기회' 사이에서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열정' 안에 '고통' 있다.


'열정'과 '고통'의 관계도 이와 같다.

우리는 보통 '열정'은 뜨겁고 고결하고 힘찬 무한 긍정의 에너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의 어원인 라틴어 파시오(Passio)는 오랜 시간 동안 '고난'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즉, 열정의 원뜻은 '고난', '고통' 그리고 '분노'를 뜻다. 영화나 뮤지컬에 등장하는 'The passion of the Christ(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제목을 떠올려보자. 10세기에 쓰인 라틴어 Passionem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육체적 고통을 의미했다.

(지금까지 그 제목이 '예수의 열정'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있을 수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왜 '열정'의 어원은 '고통'의 뜻으로 시작되었을까?

예수의 고통은 그저 단순한 아픔이 아니었다. 인류를 위해 무언가를 이루려는 큰 뜻이 있었다. 즉, 뜻을 이루기 위해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고통을 감내한 자는 끝내 그 뜻을 이루게 된다.


우리는 때로 '열정'을 발휘할 때 '고통'을 느끼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게 아닌가?

왜 즐겁지가 않지?

왜 괴롭지?


그러다 결국 힘들게 달궈 놓은 열정을 잃고 만다.

그것은 열정이 아니라는 무언의 압박을 스스로에게 가한다. 이는 열정 안에 고통이 있다는 것을 몰랐거나, 고통을 느끼는 순간 이것은 열정이 아니라고 단순히 결론짓는 오류에 빠지기 때문이다. 또는, 열정은 화려하고 달달하고 카페인 듬뿍 들어간 스포츠 음료처럼 내내 다이내믹해야 한다고 기대했거나.


이는, '위기' 속 '기회'를 보지 못하고, '기회' 속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같다.


열정은 한 번에 타오르는 화염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불씨다!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중 어느 누가 더 열정적일까?

당연히 후자 쪽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좀 반론을 재기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의 열정은 화염과 같아서 이내 사그라들 가능성이 높다. 행여나,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와중에 '해야 하는 일'을 마주하게 되면 쉽게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해가며 마침내 '하고 싶은 일'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의 자양분이 되어가는 그 과정을 오롯이 견디는 것이다. '견딤'은 '고통'을 수반한다. 이러한 사람의 뜨거움은 한 번에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불씨와 같다.


묵묵히 해나가는 일과 태도엔 힘과 의지가 있다.

이 '힘과 의지'를 나는 '열정'이라 말하고 싶다. 최근에 역주행을 단단히 한 어느 걸그룹을 예로 들면 좋겠다. 해체 바로 직전 역주행을 하였고, 데뷔 후 1위까지 1,854일이 걸린 신기록을 세웠다. 단지 춤추고 노래하는 화려한 모습(하고 싶은 일)에만 열정이 타올랐다면 그들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꾸준히 견디며 자신의 일들을 묵묵히 그러나 밝은 웃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돈이 되지 않아도 이틀에 걸친 왕복 12시간의 백령도 군 위문 공연도 회자된다.(해야 하는 일)


결과는 다시 말하지 않아도 기적과 같은 일이 되었다.

세상이 몰라줘도 이어간 그들의 행보는 이제야 재조명받게 된 것이다.


한 번에 타오르는 화염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열정의 불씨로 이루어낸 결과다.




나는 이제 '열정'을 떠올릴 때 '고통'을 떠올린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기로 했다면, 나는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하기로 한다. 견디기의 고통, 내 능력치 이상의 것을 끄집어내야 하는 용기, 불확실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신념.


어느 결과를 마주하기 전까지 그 모든 다짐과 과정은 말 그대로 '고통'이다.


그러나, '열정'과 '고통'은 함께 온다는 사실과 가치를 떠올린다면, 그 '고통'은 꽤 참을만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

고통이 커질수록, 내가 이루어낼 가치는 더 커질 것이라는 기대. 고통의 연속이 한순간만 타오르는 화염을 꺼지지 않는 불씨로 만들어 줄 것이란 믿음과 함께 말이다.


'열정'과 '고통'.

'위기'와 '기회'.


정답은 절대 주지 않지만, 삶은 알듯 말듯한 힌트를 생각보다 많이 흘려주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잽싸게 알아채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는 열정과 고통을 오가며 이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낼 수 있다.




[글쓰기 강의 + 함께 쓰고 출판하기]

스테르담 글쓰기 클래스(쓰기+출간)


[글쓰기 시작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

탈잉 글쓰기 클래스(VOD)

탈잉 글쓰기 클래스(오프라인/줌라이브)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에듀 캐스트 직장내공 강의 (VOD)


[종합 정보 모음]

스테르담 저서 모음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열정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