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해내는 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Apr 03. 2021

어떻게 열정이 변하니

나는 이제 더 이상 변하는 내 열정이 부끄럽지 않다.

사랑과 열정에 대한 착각


은수: 우리 헤어지자
상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영화 봄날은 간다 중에서 -


우리는 사랑에 대한 두 가지 큰 착각을 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사랑은 돌아온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랑은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고 외친 주인공은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했고, 봄날의 사랑도 영원하지 않음을 우리는 목도했다. 사랑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 고정관념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가질 수 없는 걸 '영원'으로 박제하려는 우리네 욕망과 착각으로부터 일 것이다. 예를 들어, 영생이 그렇고 행복이 그렇다.


또 하나.

'열정'에 대한 마음도 '사랑'에 대한 그것과 다르지 않다. 어찌 보면 열정은 나와의 밀당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두 주인공이 마주 보고 서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 거리 위에서처럼, 마음속 어느 거리 위에서 나와 '나'는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눈다.


어떻게 열정이 변하니...


힘들지?
버스하고 열정은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열정은 거짓말과도 같이 변해버리는 사랑을 닮았다.

용광로도 씹어버릴 만큼 뜨거웠던 열정의 온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식어 버리고, 내가 언제 그러한 온도를 지니고 있던 적이 있었을까를 회의하며 자괴감에 휩싸이고 만다.


열정은 뜨겁다.

그러나 그 온도에는 한계가 있다. 한계에 부딪친 온도는 식어야 할 운명이다. 식은 열정은 가치가 없다. 차가워져 버린 열정을 붙들고 나를 자책하는 건 우리 삶에서 매우 익숙한 광경이다.


그러나 우린 끝내 식어버린 열정을 붙들고 미련을 퍼붓는다.

'예전에 우린 뜨거웠잖아... 우리 다시 뜨거워져보는 게 어때?'


술 먹고 옛 연인에게 전화하듯, 나를 내려놓고 온갖 지질함을 부려보지만 잃어버린 온도를 찾진 못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렇게 '열정'은 '사랑'을 닮았다.

영화 속 상우가 실연으로 힘들어하자, 상우가 사랑하는 할머니는 그에게 말한다.

"힘들지?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나는 이 대사에서 '여자'를 '사랑'으로, '사랑'을 또다시 '열정'으로 바꾸어 본다.

바꾸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열정'은 '사랑'을 닮았고, 떠나간 온도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게 대사 하나로 설명이 되는 것이다.


열정은 곧 또 온다.
사랑이 기어이 또 오는 것처럼.


사랑에 덴 사람들은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거짓말이다. 사랑은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고, 하지 말아야겠다고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것은 내가 결정하고 다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열정도 마찬가지다.

식어버린 열정을 놓으면, 또 다른 열정이 찾아온다. 열정의 온도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닌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 내가 그 온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면 좋겠지만, 열정엔 온도를 조절하는 스위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열정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치 사랑과도 같이 오는 것이라 믿는다.


어떤 일에 열정을 다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좋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늘을 모르고 올라가던 온도. 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온도. 나는 그저 뜨거워졌을 때 그것에 미친 듯 빠져들고, 차가워졌을 때 그저 나는 정신이 들어 허탈해졌음을 느껴봤을 것이다.


그러나 슬퍼만 할 필요는 없다.

열정은 곧 또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사랑이 기어이 또 오는 것처럼 말이다.


항상 사랑하거나, 항상 열정을 가지고 살 순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기다릴 수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사랑'과 '열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며 살고 있다.

최고의 가치라 하여, 그 둘을 항상 유지하거나 지켜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숨도 쉬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며, 화장실도 가야 하고 그저 멍하니 홀로 앉아 있는 시간을 갖기도 해야 한다.


그러니까, 항상 사랑하거나 항상 열정을 불태울 순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둘을 한 시라도 안 하고 있으면 뭔가 잘못되었다 생각한다. 사랑이 있으면 이별도 있고, 열정이 있으면 냉정도 있는 것인데 말이다.


'사랑'과 '열정'의 또 하나 공통점은 사람을 순간의 영원에 중독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가장 뜨거웠던 그 순간만을 기억하게 하여, 순간이 영원해야 한다고 믿게 만드는 것. 순간 박제된 시간에 저항하느라 우리는 지질해지는 것이다.


객관적으로는 그 순간이 영원할 수 없고 사랑은 변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결국 그것을 인정하지 않아 발생하는 모든 처참함에 스스로를 들이밀고 만다.




사실, '사랑'이나 '열정'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건 우리의 마음이다. 그 둘은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사랑'이나 '열정'을 고정값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마음에 와 닿아 작동되는 순간 그것은 변동 값이 된다.


그것들이 변동 값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무릇, 죽은 것은 딱딱하고 산 것은 펄떡이고 물렁하다. 펄떡이고 물렁하다는 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즉, 사랑이 변하는 이유.

열정이 변하는 이유. 아니, 그것에 대한 우리네 마음이 변하는 이유.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은 또한 온기를 가지고 있다. 계속해서 너무 뜨겁거나, 계속해서 너무 차가우면 우리는 살 수 없다. 뜨거워짐과 차가워짐을 반복하며 우리는 온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열정을 불태워야 한다는 착각은 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사랑이 왔을 때 그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우리는 무언가 뜨거운 열정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것에 온 힘을 다하면 된다. 그 온도가 식어 열정이 사라질지언정 가장 뜨거운 온도를 만들어 내고 후회 없이 불사르면 되는 것이다.


고로, 나는 이제 더 이상 변하는 내 열정이 부끄럽지 않다.


항상 뜨거울 필요는 없다고, 뜨거워질 일이 있을 땐 후회 없이 뜨거워지고 차가워질 땐 그저 그 식어감을 받아들이자고 그저 나에게 말한다.




[글쓰기 강의 + 함께 쓰고 출판하기]

스테르담 글쓰기 클래스(쓰기+출간)


[글쓰기 시작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

탈잉 글쓰기 클래스(VOD)

탈잉 글쓰기 클래스(오프라인/줌라이브)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에듀 캐스트 직장내공 강의 (VOD)


[종합 정보 모음]

스테르담 저서 모음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