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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29. 2021

삶은 욕구의 만족을 희생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욕구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

견물생심(見物生心)


어느 온라인 쇼핑 사이트를 연다.

'Time sale'이란 글자가 큼지막하다. 정말 다른 어디를 뒤져봐도 이만한 가격이 없다. 갑자기 없던 게 생긴다. 이걸 바로 사야겠다는 생각. 사실, 그 물건들은 내게 딱히 필요 없는 것들이고 앞으로도 필요 없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마음은 초조해진다. 화면을 다시 위아래로 움직이며 언젠간 이 물건을 쓸 곳이 분명 생길 거란 확신과 지금 아니면 이 가격에 살 수 없을 거란 순간적이고 초월적인 합리화가 나를 지배함과 동시에 이미 배송 정보는 뜨고 마는 결과를 맞이한다.


'견물생심'.

말 그대로 무언가를 보자 없던 '욕구'가 생겨난 것이다.


없던 이 마음은 어디에서, 왜 온 것일까?


'욕구'에 관해 심리학자들은 이미 그에 관한 연구에 몰두했고, 수많은 성과를 내보였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 특히 '욕구'와 관련된 이론은 이미 다양하다.


프로이트는 사람은 출생과 동시에 '심리성적 발달단계'를 거친다고 주장했다.

이 발달 단계는 '구강기' → '항문기' → '남근기' → '잠복기' → '생식기'를 거친다. 각각 입, 배변, 성기, 호기심, 이성과 관련된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이다. 


발달단계를 이루는 근간은 '리비도' 즉, 본능적인 성 본능이다. 

해당 과정을 거치며 단계에 따라 쾌감을 느끼는 신체 부위와 특성이 달라진다고 보았다. 중요한 건, 각 발달 단계의 과정에서 욕구의 만족은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치면 '과잉'이 되고, 부족하면 '고착'되기 때문이다.


'고착'은 좌절과 불안의 결과다.

즉, 욕구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으면 각각의 단계에서 주저앉게 된다. 주저앉게 되면 퇴행하게 되고, 퇴행하면 내 삶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들러는 '개인심리학'의 주창자다.

그는 일관성 있는 사회에 속한 실제로서의 개인을 중시했다. 프로이트의 환원론적 인간관을 반대하며, 인간을 더는 분류하거나 분리할 수 없는 완전한 통합체로 보았다. 


그렇다면 이 완전한 통합체가 살아가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인간을 '완성을 향해 역동적으로 나아가는 존재'로 보았고, 이 근간엔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열등감'은 우월성을 추구하는데에서 온다. '우월성'은 자기완성 혹은 자아실현의 개념이며 결국 '열등감'과 '우월성'은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로 수렴된다.


즉, 아들러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고 본 것이다.




에릭 에릭슨은 '심리사회 발달 단계'를 정립했다.

이 이론은 인간이 아기부터 성인까지 통과해야 하는 여덟 단계를 식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 단계를 넘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는 것은 프로이트의 발달단계와 엇비슷하지만 완료되지 않은 단계는 고착되는 게 아니라 장래의 문제로 예상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에릭슨은 프로이트 정신분석 체계에 불만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탈하기보단 그 이론을 확장하기를 택했다.

하여, 인간의 욕구는 '이드(원초아)'보다는 '에고(자아)'에서 더 많이 온다고 보았다. 그가 '자아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다.


사람의 욕구는 본능에서 나오는 충동이 아니라 사회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정체감을 유지하려는 데에서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위 세 명의 심리학자의 이론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역시나 '욕구'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오늘도 나를 숨 쉬게 하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욕구'란 뜻이다. 그러하기에 심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그 '욕구'를 파고들었다. 각각의 이론은 다른듯하지만 결국 출발점과 도착점의 꼭짓점은 '욕구'에서 출발해 '욕구'로 귀결한다.


문화는 본능의 만족을 희생으로 창조된 것
삶은 욕구의 만족을 희생으로 창조되는 것


프로이트는 '문화는 본능의 만족을 희생으로 창조된 것'이라 말했다.

이 말에 흔쾌히 동의하는 이유는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이 사회는 우리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욕구를 채워가며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말을 인용하자면, '삶은 욕구의 만족을 희생으로 창조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견물생심'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면, 사실 이것은 없던 마음이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없다.

사람의 마음엔 다양하고 규명할 수 없는 '욕구'들이 존재하고 있고, 이것들은 사회와 사람 그리고 개인의 상황과 심정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부유하다 어떠한 자극을 받고 급격히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 어느 욕구도 '무(無)'에서 오지 않는다.

생겨나는 모든 욕구와 욕망 그리고 욕심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우리가 할 것은, 내 마음에 어떤 '욕구'가 있는지를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욕구'는 본능적이고 충동적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그리고 그 마음들이 생겨나는 마음의 기저를 조금이라도 더 헤아리는 순간. '욕구'는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더 손에 다룰 수 있는 무엇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견물생심'의 상황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주문 버튼을 쉽사리 누르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욕구'를 채움으로써 내 삶이 창조되고 있다면, 내 '욕구'를 잘 앎으로써 삶의 방향 구체화할 수 있다.

그 과정과 기술에 좀 더 익숙해진다면, 그것들을 헤아려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설정하여 이끌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다.


'욕구'에 이끌리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욕구'를 활용하여 나를 성장시키고 원하는 바를 하나라도 더 이루어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욕구의 만족을 통한 삶의 창조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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