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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26. 2021

때론, 페르소나가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이제는 짐 안에 내게 유용한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들여다볼 때다.

페르소나는 여러 겹이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쓰던 가면을 말한다.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이 '사회적 역할', '사회적 가면'으로 풀이하면서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나는 이 표현을 두고두고 회자한다. 우리네 삶이 이토록 복합적이고 예외적이고 변수가 많은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페르소나의 향연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하염없이 스스로 방황하고, 하염없이 다른 이와 갈등을 겪는 이유를 돌아보면 거기엔 여지없이 '페르소나'가 있다.

우리는 하나의 페르소나를 쓰는 게 아니라, 여러 겹의 가면을 쓰고 있다. 그것도 동시에 써내야 한다. 더 무서운 건, 내가 쓰고 싶은 가면보다는 써야만 하는 가면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내 얼굴엔 여지없이 직장인이란 페르소나가 써져 있다.

페르소나 속 나의 본심은 다 때려치우고 늦잠을 자고 싶지만, 먹고살아야 하는 내 사회적 역할이 무거운 몸을 기어이 일으킨다. 동시에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며, 남편이고, 아빠이며, 아들이고 누군가의 친구이자 동료다. 어느 아침 단지 눈을 떴을 뿐인데, 사방에 흐트러져있던 수많은 가면들이 내 얼굴에 다닥다닥 붙는다.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부쩍 많아질 땐, 나에게 주어진 페르소나를 돌아보는 게 좋다.


쓰고 싶은 페르소나와
써야 하는 페르소나


페르소나 안에 감춰진 진정한 나를 '원형'이라 한다.

즉, '본디의 모양'을 뜻한다. 그런데 본디의 모양은 페르소나에 여지없이 휘둘린다. 이게 말이 되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문득, 마음속에 한 질문이 떠올랐다.


'페르소나'와 '원형' 둘 중, 어느 것의 크기가 더 클까?


나는 당연히 '원형'의 크기가 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다. 단언컨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페르소나는 수 십, 수백 겹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조차 모르는 가면들도 무수하다. 물리적인 개수와 양으로도 내 '원형'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또한, 페르소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 자신' 즉, '원형'은 희미해진다. 내가 쓰고 싶은 페르소나보다는 써야 하는 페르소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해 한 평생 직장에 헌신을 한 사람이 퇴직을 하면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을 하는 경우나 아이에게 헌신하는 육아를 하다가 자신을 잃어버려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그 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에 짓눌릴 때 자신을 찾기 위해 글을 쓰거나, 명상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살아 있음을 느끼려고 발악하는 이유다.


페르소나로 인해, 내 '원형'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각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페르소나를 역이용하는 방법


더 큰 세상을 보려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라는 말이 있다.

즉, 나보다 큰 존재나 수단의 흐름을 활용하라는 말이다. '페르소나'는 '원형'보다 크다. 그렇다면 '원형'인 우리는 우리보다 큰 '페르소나'를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미 나는 답을 이야기했다.

매일 아침.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천근만근한 몸을 일으키게 한 건 다름 아닌 페르소나다.


돌이켜보면, 나는 '직장인'의 페르소나 덕분에 하지 못했던 걸 해낸 게 참 많다.

엑셀과 파워포인트는 물론, 꾸준하지 못한 내가 꾸준히 출근과 퇴근을 하고 있다. 월급은 꾸준함의 상징인데 20여 년 간 월급이 끊기지 않았으니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꾸준함을 어느 정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선배, 상사, 부장, 마케터, 기조 연설자, 면접관 등등의 다양한 직책과 직급을 통해 직장인의 페르소나를 쓰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해냈다.

불가능해 보이던 프로젝트를 성사시켰고, 나서기 좋아하지 않는 내가 해외 바이어들을 위해 테이블 위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를 유창하게 연습하여 수 백 명 앞 기조연설을 했고, 갑작스러운 해외 파견 발령에 3개월 간 한 국가의 언어를 습득하기도 했다.


직장인의 페르소나를 쓰지 않았다면,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일들이었다.


'작가'라는 페르소나도 그렇다.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다'란 신념으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글을 써 나갔다. 글이 쌓이고 여러 권의 책이 되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땐, 여지없이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억지로라도 쓴다. 그러면 무엇 하나라도 생산해내는 결실을 맞이한다.


사람은 미약한 존재이지만, '부모'가 위대한 이유도 이와 같다.




삶의 무게는 페르소나의 무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무게는 삶에 도움이 된다. 근육을 단련하거나, 체력을 좋아지게 하거나. 또는 바람에 흩날리지 않으며 중심을 잡고 오뚝이 서있을 수 있는 건 '무게'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삶의 무게를 '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삶의 중심을 잡게 해주는 '추'로 활용할 것인가.

'페르소나'는 아무리 봐도 '짐'이다. 그러나 역으로 그것을 활용하면 '원형'인 내가 아예 도전하지 않거나, 해내지 못할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페르소나는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내 가면들을 하나하나 규명해야 한다. 그것들을 규명해 나아갈 때, 페르소나는 '짐'이 아니라 '추'가 될 수 있다.


더불어, 불가능한 것을 해내야 할 때 어떤 페르소나를 꺼내어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삶의 기술도 습득할 수 있다. 내가 못하겠으면, 페르소나의 힘이라도 빌리는 것이다.


새삼, 나를 짓누르는 페르소나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는 그 짐 안에 내게 유용한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들여다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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