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작가'라는 페르소나 선물하기

누구의 인정도, 허락도, 평가도 필요 없다.

by 스테르담
살다 보면 남이 아닌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을 때가 있다.


보통 선물은 내가 남에게 주는 것이지만, 그 생각이 바뀌어 나를 챙겨야 할 때가 분명 있다.

소위 말해 마음껏 플렉스를 하지 못해 왔던 나를 위해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 온 돈으로 벼르고 있던 무언가를 구입하거나, 자주 먹지 못하는 음식을 맛보는 것이 그 대부분의 방법이다.


그렇게 내가 마주하는 선물은 늘 옳다.

갖고 싶었던 것, 먹고 싶었던 것을 대할 때 행복지수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단, 그 효과가 그리 길진 못하다. 행복은 어차피 순간이라 쳐도, 그때가 너무 짧고 선물을 주고받으면 그러할수록 그 감흥은 덜해지면 덜해졌지 더해지진 않는다.


게다가 어느 땐, 더 큰 마음의 헛헛함을 느끼기도 하고, 그냥 조금 더 아낄 걸...이라는 후회마저도 들기도 한다.


선물은 상대방을 잘 알고 주는 것이 좋다.

무엇이 필요한 지, 어떤 걸 주었을 때 가장 기뻐할지 상대방을 배려하며 고르는 그 과정도 모두 선물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나를 위해 무언가를 사주고 먹여주는 선물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을까를 항상 더 고민한다. 일회성 선물이 아니라, 정말로 나에게 필요하고 그 행복감과 만족감이 더 지속되는 무언가를 찾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다 찾은, 내가 나에게 준 가장 소중하고 귀한 선물은 바로 '작가'라는 '페르소나'다.

이 선물을 주지 않았다면 나는 어땠을까. 조금 더 빨리 주고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투정마저 생기는 이 선물은, 그야말로 나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페르소나를 겹겹이 덮어쓴다.


그러나, 그 페르소나 중에 내가 스스로 쓴 것은 몇 안되고 세상과 사회가 나에게 강제로 덮어 씌운 페르소나에 헉헉거리며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삶이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기대하지 않았던 페르소나를 무겁게 쓰고 다니다 보면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진다. 희미해진 존재는 무기력하다. 무기력한 존재는 또한 행복하지 않다.


그러니 행복해지기 위해선 무기력을 극복해야 하고, 스스로 좀 더 선명해져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선 우선 내 맘을 들여다보는 것이 우선이다. 겹겹이 쌓인 페르소나 속에 상처 받고 숨어 있는 그 마음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발견하고 또 보듬어줘야 한다. 안에 있는 걸 꺼내고, 꺼낸 것을 보고. 어떠한 상태인지를 판가름하여 내게 필요한 것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나에게 주는 진정한 선물이 아닐까 한다.


나를 내어 놓고, 여실한 나를 마주하는 법.

바로 '글쓰기'다. 그렇게 하나 둘, 나를 꺼내어 놓다 보니 나는 어느새 '작가'가 되었다. '네가 무슨 작가냐?'란 비아냥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씀으로 해서 작가가 되었다고 당당히 말한다. 책을 내었다고 작가가 아니고,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고 항변한다. 나의 이야기와 세계관, 그리고 내 생각과 감정을 꾸준히 써 내려가면 나는 그가 바로 '작가'라 말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이 말을 좀 더 잘 이해할 것이다. '나만의 집을 짓는 사람'. 그가 바로 '작가'다.


세상이 주는 페르소나만 덥석 덥석 받아 쓰다가,
나는 나에게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선물했다.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 가슴 벅차게 그것이 다가왔던 이유는, 누군가의 인정과 허락이 필요 없었다는 데에 있다. 그저 쓰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을 써 내려가는 '작가'라는 말만 되뇌면 되었다.


그러자 크고 작은 기적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내어 놓으니, 그것들은 책이 되고 콘텐츠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 쓴 게 아닌데, 그것들이 누군가에게 전해져 가치가 된 것이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시간을 들여 내 글을 읽고, 돈을 내어 내 책을 보고 강의를 듣는다. 내 삶의 과정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충만한 마음과 자기 효능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엇이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크고 의미 있는 선물을 한 것이다.




선물은 주는 사람도 기쁘고, 받는 사람은 더 행복하다.

그래야 좋은 선물이란 생각이다. 이렇게 볼 때,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나에게 선물한 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많은 분들에게,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스스로에게 선물하라고 말한다.

그건 어렵지 않다. 완벽한 선물을, 완벽하게 포장하여, 완벽한 시점에 선물하려는 강박이 자신에게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선물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저, 쓰면 된다.

당장 문학작품, 근사한 자기 계발서나 길이 남을 소설을 쓰라는 게 아니다.


자신에 대해 쓰면 된다.

누구의 인정도, 허락도, 평가도 필요 없다.


'작가'라 불러주지 않는다 하여 노여워할 필요도 없다.

나는 이미 내 인생을 써 내려가고 있는 '작가'다. 이 또한 누군가의 동의도 필요 없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어서 빨리 선물하시길.


이 선물은, 그 누구도 나에게 줄 수 없는 세상 하나뿐인 선물이란 걸 알게 될 것이다.

하루라도 더 빨리 왜 주지 못했을까란 후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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