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
- E.Hemingway -
헤밍웨이의 친구들이 단어 여섯 개로 자신들을 울릴 만한 소설을 써 보라고 장난 삼아 내기를 걸자, 헤밍웨이는 즉석에서 이 글을 지어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므로 그 진위에 대한 가타부타가 있긴 하나, 누가 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여섯 단어로 심금을 울렸다는 게 더 큰 의미임을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이 글을 쓴 게 헤밍웨이라면 그의 명성에 걸맞는 찬사를 보내고, 누군가 지어낸 말이라면 그 또한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헤밍웨이의 이 일화를 봤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한 단어는 바로 '필력'이었다.
'필력'은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 '글씨의 획에 드러난 힘'을 말한다. 그 힘의 최종 목적지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머리'를 그 종착지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으나, 의사결정을 하는 건 머리가 아닌 마음임을 되새겨보면 결국 필력은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마음이 동할 때 우리는 비로소 결심하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다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표현을 발견하거나, 내가 표현해낼 수 없는 걸 자신만의 색을 담아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글을 보면 말 그대로 '감동'한다.
그 마음 안에는 그에 대한 동경과 함께 시기와 질투도 공존한다.
내겐 없는 필력이 그들에겐 있어보여서다.
'필력'의 또 다른 의미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왜 이런 신박한 표현을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이러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나는 필력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더 무서운 건, 그렇다면 '나는 글쓰기를 포기해야 하나...'란 생각이 슬며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럴 땐 필력의 또 다른 의미를 찾아 나서야 한다.
나는, 앞서 이야기한 수려하고 멋진 문장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 힘을 '필력'이라 흔쾌히 인정한다.
그러나, 그게 필력의 전부라면 이 세상엔 글을 쓰는 사람은 매우 한정적일 것이다.
글쓰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필력'은 그 사전적 의미에만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는 필력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 각자의 글은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른다.
이리 봐도 마음에 안 들고, 저리 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의 절반도 내어 놓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때론 내가 쓴 글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곡해를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보잘것없는 글을 꾸준히 내어 보이면 어떻게 될까.
'필력'의 또 다른 뜻은 바로 '쓰는 힘'이다. 그러니까, 누가 뭐래도 내 생각과 마음을 꾸준히 내어 놓는 힘. 조금은 지치더라도 중단하지 않고 어쨌든 계속 써 나아가는 힘. 꼭 하루에 하나의 글을 쓴다는 강박보다는, 내 마음을 돌이켜봐야 할 때 나와 마주하여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써 내려가는 글의 힘.
나는 이 모든 것이 바로 '필력'이라는 걸 알았다.
필력만으로 글이 써지는 건 아니다!
마치 우리가 필력만 있으면 글을 술술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 중심에 나 자신이 있어야 한다. 내가 없고 필력이 있는 것보다, 소위 말하는 필력은 없어도 나를 제대로 인식하면 글은 써진다.
그래서 과연 '필력'이란 무엇일까?
첫째, '필력'은 '나를 관찰하는 힘'이다.
모든 이야기는 '나'로부터 나온다.
펜을 들던, 자판을 두드리던. 그것을 기어이 글로 만들어 내는 것도 '나'다. 그러한 나를 깊이 관찰하면 할수록. 그러니까, 나를 관통하면 할수록 글의 힘은 커진다.
내 글에, 나의 성분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가 바로 필력의 조건이자 잣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둘째, '필력'은 '안에 있는 것을 내어 놓는 힘'이다.
나를 잘 관찰하고도, 그것을 꺼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것은 문법이나 문장 표현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나에 대한 관찰이 부족하거나 또는 나와 마주하는 게 무서울 때 그렇다. 대충 쓱 둘러보면 단순한 관찰로만 끝난다. 관찰은 깊고 뾰족하여 나를 관통해야 한다. 그 관통의 과정에서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어두움과 부끄러움이 마구 흘러나올 수 있다.
그것들을 용기 있게 마주하고 내어 놓을 때, 필력은 강해진다.
셋째, '필력'은 '힘을 잃지 않고 계속 쓰는 힘'이다.
멋있는 문장을 만들지 못해 글을 멈추는 건 말 그대로 어리석음이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작가들도, 모든 문장을 항상 멋있게 써 내려가는 건 아니다.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챕터와 챕터로 불어나는 과정에 명문장들은 쏟아진다.
계속 써야 한다.
글의 양을 늘리고, 내 생각을 풀어내고, 내 마음을 계속해서 내어 놓아야 한다.
넷째, '필력'은 '상대방을 사색하게 만드는 힘'이다.
내 사색의 정도가 낮으면, 내 글을 읽는 상대방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 문장을 붙들고 있을 여유와 필요가 없다. 상대방이 내 글을 읽고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는 건 글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그 글 안에 있는 내 생각의 힘을 알아챈 것이다.
문장이 투박하더라도,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메시지가 강렬하면 누구든 함께 사색한다.
결국, 필력은 내 사색의 힘이라고 해도 좋다.
다섯째, '필력'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내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이 동요했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이것을 최고의 필력이라 칭한다. 필력은 이러한 순간을 위해 발휘되어야 하는 힘이다.
마음이 동한 사람은 위대한 걸 해낸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책 한 권 낸다고 인생 바뀌지 않는다.
삶이 바뀌었기에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이다.
즉, 내 삶을 바꾸는 힘.
그것이 바로 '필력'인 것이고, 그 정도의 힘은 되어야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문장을 수려하게 뽑아내는 것만이 '필력'이 아니다.
나를 관찰하고, 관통하고, 그것을 내어 놓고, 계속 쓰고, 사색하고, 내 마음을 동하게 하여 다른 이의 삶에도 그 감동을 전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