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화면과 깜빡이는 커서 앞에 나는 발가벗은 듯 움츠러들기 일쑤였다. 책상과 의자, 컴퓨터와 자판. 널찍한 모니터라는 멍석이 깔려 있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모든 게 준비되었고, 이제 나만 쓰기 시작하면 되는데 내 조급함도 모른 채 손가락은 아무 키도 누르지 못하고 허공을 허우적대곤 했다. 참담했다. 멍석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있는 내 모습. 그저, 나 자신이 미웠다.
글쓰기를 해보지 않았다는 두려움.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맺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글쓰기에 대한 무지함.
자신을 미워하려 글쓰기를 시작한 게 아닌데.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글쓰기를 멈춰야 마땅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글쓰기를 할 수 없다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합리적이고도 합당한 이유가 차고 넘쳤다.
또 하나.
나는 소위 말해 필력이 없었다. 써본 적 없으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서 빨리 필력을 키우고 싶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내 생각의 저변엔 '필력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라는 강력한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내 앞에, 차곡차곡 쌓은 벽돌로 이루어진 거대하고도 단단한 벽. 글쓰기를 가로막는 그 벽의 위용은 상상 이상이었다.
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계속해서 손가락은 허공을 헤맸다.
그러다 시선을 나 자신에게로 옮겼다. 초라한 내가 보였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편하지 않은 마음을 파고들었다.
어라.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벽'을 바라볼 땐 써지지 않던 글이, '나'를 바라보니 손가락은 허공에서 내려와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벽에 압도되어 글쓰기를 멈추는 게 아니라, 압도된 내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고 생각하니 글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나는 쓰기를 이어가 것이다.
'나'라는 소재가 있는 한, 글쓰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글쓰기의 99.9%를 이루는 건 '나'라는 것이다.
내 생각, 내 마음, 내 경험, 내 삶, 내 페르소나 그리고 나 자신 그 자체. 글을 쓰는 데 다른 무언가가 필요할까 싶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대신해서 살 수 없고, 다른 누군가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쓰는 건 '나'에 대한 이야기이자, '나'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아마도, 나를 가로막고 있던 그 거대한 벽에는 '글쓰기는 필력 99.9%'란 문구가 써져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문구를 쓴 것은 다름 아닌 '나'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글을 쓰다 보니 이제야 좀 알겠다.
글쓰기는 99.9%의 나와 0.1%의 필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필력'이라 하여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내 상태, 내 마음과 생각을 잘 나타내는 것이 필력이지 문장을 수려하게 써나가는 게 필력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그래도 남들보다는 잘 알고 있으므로, 나를 잘 표현하면 필력은 자연스레 좋아지게 된다.
더불어, 중요한 건 '필력'보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하고자 하는 말을 잘하려 노력하고, 그것을 잘 전달하려 애쓰는 그 자체가 곧 필력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필력에 나를 욱여 놓는 게 아니라, 나를 잘 표현하다 보면 필력이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늘도 필력의 압박에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거나, 그 벽 앞에 주저앉은 분들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