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관통하는 건 답이 아닌 질문이다

'나'라는 마음의 '호수'에, '왜'라는 '돌'을 매일 던지자는 다짐

by 스테르담

글은 나를 관통해야 한다.

나를 관통해야만이 글은 완성되고, 완성된 그 글은 누군가에게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다.


'관통'은 말 그대로 뚫는 걸 말한다.

내 마음은 뚫어야 한다. 마음은 언제나 빗장을 꼭 걸어 잠근 어두운 방과 같아서 빛을 쏘이고 환기를 시켜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병이 나거나, 무의식 중에 억압된 것들이 폭발한다. 문제는, 빗장에 빗장을 걸고 있는 마음을 우리는 돌아볼 시간과 여유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먹고 사느라 바쁜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그리도 바쁜 것인데 그 바쁨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만다.

모두가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글을 쓰는 시간은 마음의 빗장을 풀고, 꽉 막힌 무언가를 관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만큼 그 역할을 잘 수행하는 존재는 없다. 쓰기 위해선 생각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끄집어내야 한다. 마음에서 나오지 않은 글엔 한계가 있다. 글쓰기는 단지 '기록'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나를 관통하지 않은 글은, 단순 기록에 가까운 글일 가능성이 높다.


나를 관통하는 글은 머리와 마음 모두를 활용해야 한다.

머리로는 사색을 해야 한다. 그 누구보다도 깊게. 그리고 넓게. 지루하고도 진지한 그 과정을 거쳐내면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된다. 뻔한 일상 하나하나가 소재가 되고, 의미가 되고, 깨달음이 되며 동시에 통찰이 된다.

그렇다면 다음은 이것을 마음으로 써내야 할 차례다. 발견한 소재를 하나하나 모아 그것을 마음으로 보내고, 마음이 느끼는 감정과 느낌을 손가락 끝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차가운 머리를 거쳐, 따뜻한 마음을 통해 나오는 글은 유연하면서도 단단하다.


또 하나.

나를 관통하는 글은 어느 정답에서 나오지 않는다. 알고 있는 것에서, 또는 남들이 말하는 기준에 따라 나오는 게 아니다. 바로, '질문'에서 그것들이 나온다. '질문'은 '모름'에서 출발한다. 모르기에 질문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질문을 하면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그게 정답인 걸까? 알고 있는 것이라도 질문하면 모르는 것 투성이다. 모르는 것 투성이를 사색하면 꽤 많은 것들이 남는다.


글쓰기 전에는 세상의 정답을 맞히려 아등바등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답에 연연하지 않고 알고 있는 것에도 물음표를 갖다 댄다.


나를 관통하는 건 답이 아닌 질문이다.

삶엔 정답은 없다는 게 내 결론이다. 다만, 각자의 질문에 대해 각자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만이 있을 뿐이다.


그 여정의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이 바로 '글쓰기'다.

마음의 빗장을 풀어주는, 아니 그보다 먼저 마음을 되돌아보자고 조용히 그리고 크게 외치는 목소리 또한 다름 아닌 '글쓰기'다.


'나'라는 마음의 '호수'에, '왜'라는 '돌'을 매일 던지자고 다짐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인문학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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