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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19. 2021

여행을 하고 사진을 SNS에 올리지 않은 이유

누구로부터의 인정으로 나는 존재하는가.

오랜만에 마주한 바다는 나를 오롯이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매일 봐도 바다는 그러할 것 같다. 우주에서 보면 그저 고여 있는 물웅덩이지만, 내 눈앞 바다는 세상을 다 포용하고도 남을 기백을 지녔기에.


잠시 눈으로 그 바다를 담다가 나는 이내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었다.

수평선과 하늘의 비율을 바꾸어가며 여러 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내 눈에 담은 사진의 장수보다, 카메라에 담은 사진이 훨씬 더 많았다.


사진 속 바다는 현실보다 더 아름다웠다.

알아서 보정이 되는 카메라의 기능은 현실을 좀 더 아름답게 하는 재주를 지녔다. 우리는 그 재주를 신봉하고, 그 재주에 일희일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나는 카메라의 재주를 싫어하거나 폄하하진 않는다. 그것은 삶의 재미이고, 때론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기억이 바래져 갈 때, 현실보다 더 선명하고 예쁜 사진을 보면 그날의 장면과 감정을 조금은 더 또렷이 기억해낼 수 있으니까.


찍은 사진을 버릇처럼 바로 SNS로 공유하려다 나는 문득 그 순간에 멈췄다.

평소엔 자주 올리던 사진이었지만, 왠지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SNS에 올리는 순간 딱 거기까지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목표를 완수했다고 느끼는 안도감과 함께, 바다 앞에서 마주한 감동은 소멸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살다 보면 그러할 때가 있지 않은가.

매일 하던 행동 한 번쯤은 해보지 않고 싶은 그러한 때.


주머니에 휴대폰을 도로 넣고 눈을 감았다.

사진은 이미 많이 찍었으니, 누구에게 자랑하지 않아도 되니. 내가 어디 있다고 신고하지 않아도 되니.

나는 그저 바다와 마주하자고 다짐했다. 그러자 바다의 파도에 젖지 않으려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내 가족의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눈을 뜨니 보이지 않던 수평선에 걸친 석양이 보였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 하나가 쓰러졌다면, 그 나무는 쓰러진 것일까?

내가 바다를 봤다고 해도, 그것을 SNS에 올리지 않으면 나는 바다를 과연 본 것일까?


참으로 이 시대에 존재하기란 쉽지 않다.

사진이, GPS에 찍힌 장소가, 내가 남겨 놓은 리뷰가 내 존재를 대변하는 시대.


흔적을 남겨보지 않으려는 오기는 그것으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누구로부터의 인정으로 나는 존재하는가.

나는 나를 인정하고 있는가.

그러함으로 나는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는가.


바다가 나에게 많은 걸 물었다.

드넓은 바다가 품고 있던 건 다름 아닌 수많은 질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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