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남이 열광하지 아니하고 나만 보는 글이라 할지라도 그 가치는 변함이 없다.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그 경험과 희열은 상대적 비교의 개념이 아니라 주관적 절대성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글쓰기가 곤욕일 때가 있다.
소재가 바닥나거나, 소재가 있다한들 그것을 온전히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은 글쓰기의 선물을 모두 회수하고도 남는다.
주관적 절대성의 폐해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이,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슬픔이 되는 것이다.
그 순간 삶은 시무룩해진다.
아니, 삶이 시무룩해져서 글쓰기가 멈췄을 수도 있겠다. 글쓰기가 삶의 위로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글쓰기가 더 부담이 되는 상황. 꾸준하지 못한 마음과 글쓰기의 선물이 여기서 멈췄을까 하는 두려움이 마음과 영혼을 잠식한다.
나는 '글쓰기는 삶쓰기다'라고 말한다.
글은 어디 멀리에 있는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나와 내 삶을 표현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명제 안에서의 우선순위를 꼽자면 '삶'이 절대적으로 먼저다. 삶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글쓰기는 내 삶을 표현해내는 과정이자 도구다.
그러니,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삶이 힘들어진다면 그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삶은 글이 되고, 글은 삶이 되고
그럼에도 글쓰기는 절대 놓지 말아야 할 무엇이다.
삶은 힘들고, 글은 안 나오고. 진퇴양난의 상황 같지만 결국 글쓰기는 이어지고 만다. 내가 글쓰기를 놓더라도 글쓰기는 나를 놓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가 있는 한 '삶'은 이어지고, 그 삶은 글이 아니더라도 그 어떠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삶은 글이 된다.
내가 쓴 글은 결국 내 삶이 된다.
이 운명적 순환은 내게 있어 '선순환'과 '악순환'을 선사한다.
'삶'과 '글쓰기'는 내게 있어 기쁨이자 슬픔인 것이다. 어느 하나를 취할 수 없는 얄궂은 운명의 양가감정. 그나마 다행인 건 기뻐도 글이 나오고, 슬퍼도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모든 순간은 글감을 모으는 과정이다
글이 당장 써지지 않는다고 삶을 시무룩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시무룩한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보듬어야 한다. 써지지 않는 글을 부여잡고 나를 자책하는 건 글쓰기를 멈추게 하려는 사악한 누군가의 함정이다. 그 사악한 존재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중요한 건 내 삶과 글쓰기는 이어져야 한다는 걸 상기할 때.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함정에 빠지지 않거나 또는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나는 함정 앞에, 그 안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을 인식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과정'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 단어와 함께 갑자기 보이지 않던 함정이 보이고, 뒤죽박죽 되어있던 우선순위가 제 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사실, 우리네 삶에 끝이란 건 없다.
오직 과정만이 있을 뿐.
삶은 과정이며. 그렇다면 곧 삶은 글감을 모아가는 여정인 것이다.
돌아보아 좋지 않았던 일은 경험으로 여기고, 좋았던 건 추억으로 남기는 여유 또한 과정을 삶에 적용할 줄 아는 지혜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