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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19. 2021

새벽 4시.시차 적응의필수 코스.

시차에 적응할수록, 현지에서의 삶도 모양새를 갖추어 나간다.

네덜란드가 왜 네덜란드인 줄 알아?
출장 오면 새벽 네 시에 눈의 떠져서 네덜란드야!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농담이었지만, 직장인인 나는 직급과 연배가 높으신 분 앞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출장을 다니다 보면 나는 언제나 새벽 4시와 그렇게 조우한다.

그러니까, 그분의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기에 덜 웃겼는지도 모르겠다. '눈떠보니 이별'이라는 가사가 있듯이, 해외 출장을 다니는 직장인에게는 '눈떠보니 새벽 4시더라'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멕시코 부임 둘째 날.

역시나 나는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아무리 피곤해도, 더 자야지 다짐에 다짐을 해도. 눈 떠보면 새벽 4시다. 한국을 기준으로 서쪽으로 가든, 동쪽으로 날아오든 새벽 4시는 그렇게 이방인의 시차 적응 필수 코스인 것이다.


새벽 4시의 분위기는 오묘하다.

계절과 관계없이 대개는 (마음이)어두컴컴하다. 흔히 말하는 새벽보다는 이르고, 한 밤중이라 말하기엔 어불성설이다.


동시에 마음속엔 어수선함과 애매함이 공존한다.

다시 잠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지만 어제 미루었던 일들이 생각나니 편히 잠들 수가 없다. 그렇다고 뭔가를 본격적으로 하자니 에너지를 쏟아붓기엔 그 순간이 부담스럽다. 어영부영하는 사이 그렇게 동이 튼다.


몽롱함을 시작으로 하루를 보내면 이내 녹초가 된다.

녹초가 되는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늦어지면, 아침 눈이 떠지는 시간도 조금씩 뒤로 미루어진다.


이방인은 그렇게 현지의 시공간에 녹아드는 것이다.


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듯하다.

시차는 타임머신의 결괏값이 아닐까. 내가 살던 곳은 이미 14시간을 앞서가 있는데, 나는 그 시간만큼 뒤에 있으니 그도 그럴만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미워하는 사람들. 내 아쉬움과 미련은 이미 나를 앞서가고 있다. 아니, 내가 뒤처졌다고 해야 하는 건지...


말도 안 되는 옛 상사의 농담을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큰 시차를 두고 조우한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살았을까. 그때 내가 바란 미래의 모습은 지금의 나와 같을까.


새벽 4시에 눈을 뜨면 생각이 많아진다.

몸이 어영부영할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지는 법이다. 적응의 과정은 언제나 몽롱하다. 적응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마도 나는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제 나는 새벽 4시의 몽롱함이 싫지 않다.

많아지는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구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니까 말이다.


시차에 적응할수록, 현지에서의 삶도 모양새를 갖추어 나간다.

나는 그 순간과 과정을 오롯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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