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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23. 2021

조식 풍경 그리고 단상

오늘 나에게 주어지는 하루는 꼭꼭 씹어야지

새벽 6시.

더 이상 잠을 청하지 못하면 결국 발걸음을 옮기는 곳은 식당이다.


집이 아닌 호텔에서 이어지는 삶 기쁨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는 자에게 호텔은 그저 외로운 잠을 청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기쁠 일도 없지만, 그렇다고 주변이 열악하여 슬프거나 하진 않다. 오히려 멋지고 즐거운 것들이 가득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보고 누릴 여유가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에 내리면 적막함이 가득하다.

체크인하는 사람도, 체크아웃하는 사람도 없는 시간. 그 여유를 만끽하던 로비 직원은 살짝 긴장하여 나와 눈이 마주치지만 아침 인사 한마디에 서로는 다시금 눈웃음을 짓는다.


식당 안에는 요 며칠 마주치는 노신사가 있다.

어김없이 오늘도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양복을 입고 노트북을 펼친 그는 바쁘게 업무를 처리한다. 아마도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나 회의가 있지 않을까 한다. 바쁜 그에게 커피가 주어지고, 몇몇 개 먹음직한 빵이 그 앞에 놓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식은 떠다 먹는 것이 아닌 주문하는 것이 되었다.

이방인은 낯선 음식을 고른다. 먹어 보지 않은 걸 먹어봐야겠다는 오기와, 현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사명감. 경험해보지 못한 음식을 먹는다는 건 즐거움이다. 새로운 향과 맛. 같아 보이는 재료로도 다르게 해석되는 음식을 마주한다는 건 낯선 곳에서의 꽤 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그것을 만끽할 마음의 여유는 없다.

'먹는다'라는 말보다는 '마신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음식은 이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내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집에서 먹던 김치찌개의 아쉬움도 함께.


하나 둘.

사람들이 내려오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도 분주해진다. 그 분주해지는 틈을 타 나는 이미 조식을 다 마시고 방으로 향한다. 오늘 또다시 나에게 주어질 부담들을 천천히, 맛있게 음미하기 위하여.


조식은 마셨지만, 오늘 나에게 주어지는 하루는 꼭꼭 씹어야지 마음먹는다.


그래야 하루하루가 온전히 쌓여, 나는 마침내 이방인이라는 서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맛있고 예쁘고...가족과 김치찌개를 생각나게 하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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