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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31. 2021

멕시코 시티에서 뛰는 사람은 도둑뿐이라고?

높은 땅에서의 삶

낮은 땅에서의 추억


네덜란드 스키폴(Schipol) 공항에 도착한다는 건 해수면보다 약 5m 낮은 곳에 발을 내딛는다는 뜻이다.

나라 이름 자체가 'Nether(아래의)' + 'Land(땅)' 즉, '언더랜드'이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암스테르담이란 이름도, '암스텔 강'을 '댐'으로 막아 만든 도시라는 뜻. 풍차와 튤립에 가리어졌지만, 굳이 물을 막아 땅을 개간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생각보다 지독한 사람들인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근처엔 집보다 높은 운하들이 자연스럽게 얽히고설켜있었다.

실핏줄과 같이 촘촘하게 이어진 수많은 운하와 수로는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수면이 올라가지 않았다. 사람으로 치면 피가 자연스럽게 잘 돈다고 해야 할까. 물을 막고, 물과 싸우기보단 그들의 길을 터주어 자연스럽게 공생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지독하기만 한 게 아니다. (지독하지만) 지혜롭고 사려 깊고 개방적이라 말하는 게 옳다.


첫 주재지였던 네덜란드에서의 해저생활(?)은 그렇게 많은 걸 보고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높은 땅에서의 시작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탄 비행기는 멕시코 시티를 향해 바퀴를 내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두 번째 해외 발령. 멕시코 시티 베니토 후아레스 공항에 도착한다는 건 해수면보다 2,250m 높은 곳에 발을 내딛는다는 뜻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전 출장 한 번 없이, 바로 부임을 해야 했던 나는 언어와 치안 그리고 낯선 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걱정 말고도 고산 지대에서의 혹시라도 모를 부작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멕시코 시티는 한국에 비해 산소가 현저히 부족하다.

서울은 산소 비율이 20.5%지만, 멕시코 시티는 19.6%다. 평균 산소 비율이 한국보다 1% 정도 낮은데, 1% 차이가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두통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수치다.

산소 농도가 0.5%~1.0% 차이가 난다는 건 거꾸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수천 ppm 증가한다는 걸 의미한다. 무력감과 두통, 두뇌활동 둔화 현상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고산 증세로 인해 조기 복귀하는 출장자나 어렵게 나온 주재 생활을 정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낮은 땅에서 높은 땅으로.

운명의 장난인지, 운명의 선물인지.


나는 높은 땅에서의 시작을 온몸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멕시코 시티에서 뛰는 사람은 도둑뿐이라고?
한여름에 패딩 조끼라고?


고산 증세는 도착함과 동시에 바로 오는 경우가 있고, 어느 정도 지내다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니 멕시코 시티에 도착한 후 며칠간은 머리가 지끈했던 기억이 있다. 두통과는 거리가 먼 체질인데, 그 느낌이 마치 손오공의 긴고아(삼장법사가 손오공 머리에 씌운 머리띠)가 머리를 조이는 것 같았다.


산소가 부족하기에 격렬한 움직임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걸 모두가 알아서일까.

'멕시코 시티에서 뛰어다니는 사람은 도둑 밖에 없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대개, 사는 곳의 지형과 환경엔 다들 적응하여 그것을 이겨내려하기 마련인데, 멕시코 시티 사람들은 그것을 이겨내기보단 받아들이는 걸 택한 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하나.

멕시코 시티 연평균 기온은 15.9도이고, 여름엔 20도 안팎까지 기온이 오르내린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추운 기운이 존재한다. 정말로 농담이 아닌데, 한 여름에도 패딩조끼를 입는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현지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고산지대라는 특성이 생활에 배어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좋은 건, 그래서 멕시코 시티 사람들은 타 지역 사라들 대비 조금은 더 온순하고 친절하다는 것.

실제로 만나본 사람들이 그렇고, 현지 친구들도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지끈한 머리도, 친절한 멕시코 시티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잠시 그 고통이 잊히기도 한다.




고산증은 해발 2,000~2,500m에서 약 22%, 해발 3,000m에서 약 42%의 사람들이 겪는 증상이다.

사무실 계단 몇 개를 오르내리면 숨이 차오르는 게 나이 때문인지 산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른 곳에서보다는 좀 더 쉽게 숨을 헐떡이는 건 확실하다.


높은 땅의 삶도 낮은 땅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땅의 높고 낮음은 사람들의 들숨과 날숨을 다르게 할 뿐, 그 삶의 본질은 같다.


높은 땅에서의 삶.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지끈할 땐 지끈하고 온순할 땐 온순하며, 숨이 찰 땐 숨을 헐떡이기로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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