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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0. 2021

조급하면지는 거야, 이 각박한 직장에서.

조급하지 않으면 이기는 거야!

조급하면 지는 거야!


대리 직급을 막 달고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의 모로코 출장길이었다.

카사블랑카에서 마라케시로 넘어가는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경찰이 우리 차를 불러 세웠다. 누가 봐도 경찰이라 말하는듯한 제복 속의 그는 우리에게 속도위반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규정 속도를 준수했고, 그 어디에도 과속 카메라가 없었으며 어리둥절한 만큼이나 우리는 당당했다.


"야, 놀라지 마. 이거 돈 달라고 불러 세운 거야. 여기서 우리가 약속에 늦었다, 공항에 가야 한다, 빨리 출발해야 한다...라고 조급한 모습을 보이면 절대 놔주지 않아. 그냥 모른 척하고 버텨."


이 말을 하더니 운전대를 잡았던 선배는 의자를 뒤로 밀어 누웠다.

나도 선배를 따라 몸을 뒤로 뉘었다. 10분 정도가 흘렀을까. 정말로 경찰은 우리에게 그냥 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차를 세우는데 온 힘을 쏟았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선명하게 떠오르니 잊을 수가 없다. 아틀라스 산맥을 비추던 모로코의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환하게 그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날 이후로 내 마음속엔 지워지지 않는 울림이 하나 생겨 났는데, 그건 바로.


"조급하면 지는 거야!"


바로 이 말이었다.


그 누가 조급함의 소리를 내었는가!


직장에서의 일은 요청으로 시작하여 요청으로 끝난다.

회사는 조직이며, 각각의 조직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조직은 이윤창출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줄기를 따라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서로 부대끼지 않으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유관 부서에 요청하고, 다른 부서로부터 요청받는 일은 직장인에겐 일상이며 그것이 오늘 하루 일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 이제야 그것을 깨닫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영혼 없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직장에서의 내 하루를 돌아보면 된다.


그렇다면 요청하는 사람과 요청받는 사람 중, 더 조급한 사람은 누구일까?

대개는 요청하는 사람이 더 조급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요청한다는 건, 어떤 일을 하는데 다른 부서의 도움이 필요하다던가, 상사가 나에게 해당 자료를 다른 부서로부터 입수해오란 지시를 받았다는 뜻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무언가를 기한 내에 또는 가능한 한 빨리 받아야 한다.

말 그대로 조급하다. 조급하다 보니 망상마저 생겨 난다. 내가 필요한 자료를 제때 받을 수 있을까, 상대가 바쁘다고 거절하거나 휴가 중이어서 아예 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지난 20여 년간의 직장 생활을 돌아볼 때,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어떻게든, 또는 언젠가는 내가 필요한 걸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이리 조급하고 저리 조급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안 되면 어떡하지, 못 받으면 어떡하지... 불안과 초조가 온몸을 감싸 안았다.


나는 온몸으로 조급함의 소리를 내고 있던 것이다.


여유를 가져도 되는 이유


초조하고 조급한 걱정이 생각보다 쓸데없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나도 월급을 받고, 너도 월급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내가 필요한 자료를 받지 못한 일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는데, 요청을 받은 상대는 (내가 합당한 부서에, 합당한 요청을 했다면) 자료를 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날 애인과 싸웠다거나, 출근길 물 웅덩이에 발이 빠져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직장은 조직에 소속되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업무 설계가 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속품'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휴대폰 하나가 제 역할을 해내려면, 갖가지 부품이 제 역할을 하되 다른 부품과 호환이 되어야 한다. 물론, '호환'이란 말이 절대적 긍정을 뜻하진 않는다. 교류와 전도는 물론, 저항 값도 있기 때문이다. 꼭 직장 내 조직이 그와 닮았다. 협력해야 하지만 서로 지지고 볶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수많은 부속품은 서로 협력하고 지지고 볶으며 우리에게 동영상을 보여주고, 멀리 있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부속품이라서 억울하다고?

아니, 나는 부속품이라서 다행인 점을 떠올린다. 부속품인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부터 직장인은 내내 불행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우리는 '부속품'이란 말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제 역할을 해내는 부속품만큼 대단하고 기특한 존재가 있을까 싶다. 하다못해 손에 놓인 리모컨도 그 안 부속품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저 발치에 있는 TV를 켜지 못한다.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의 여유는 스멀스멀 올라온다.


조급하지 않으면 이기는 거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올라오는 '조급하면 지는 거야'란 울림은 내게 또 다른 의미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조급하지 않으면 이기는 거야!"


모로코의 도로에서 나는 이미 이것을 경험했다.

만약 우리가 조급하여 제발 보내달라고 했다면 아마도 그 경찰은 그날 횡재를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조급함의 크기는 내 두려움과 불안의 그것에 비례한다.


그러니 반대로 조급하지 않으면 이길 가능성이 높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조급함의 이유를 찾고. 여유를 좀 가져도 괜찮다고 다독이면 삶에서의 어느 승률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써 내려온 글의 요지는 비단 직장생활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사람, 사물, 환경 그리고 삶 그 자체의 요소요소에. 그 모든 것에 통합되고 적용된다. 사람은 조급하면 조급할수록 작아지고, 그러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커진다. 작아지는 것은 삶에 대한 내 믿음이며, 커지는 것은 마음의 크기다. 마음의 크기가 커진다는 건 포용할 줄 안다는 것이고, 포용할 줄 안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담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세상은 참으로 각박하다.

직장은 그보다 더 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자기 할 것을 다하는 사람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어영부영 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차이는 바로 마음의 여유에 있다.


다시.

조급하면 진다. 그러하지 않으면 이긴다. 남에게 지고, 남을 이겨 먹는 개념이 아니다. 모든 건 내 마음으로부터다.


조급함을 버려야지... 라며 조급해하면 안 된다.

조급해하는 나를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때, 어느샌가 마음의 여유가 피어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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