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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6. 2021

부캐가 정답은 아니야.

정답은 나 자신과 본업이다.

'부캐'라는 참 흔한 말


'부캐', 그니까 '부캐릭터(Sub-Caractor)'란 말이 시대를 아우르고 있다.

꼰대라는 말이 라떼로 진화하여 정체한 가운데, 부캐란 말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에 떠오르는 말을 예의 주시한다. 그것은 시대의 화두이자 자화상과도 같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론 꼰대라는 말 이전에 떠올랐던 화두는 '퇴사'와 '여행'이었다.

재밌는 건 '퇴사', '여행', '꼰대' 그리고 지금을 풍미하는 '부캐'라는 단어도 모두 직장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긴 내가 직장인이니 그것들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화두 속엔 직장인들의 수고와 바람이 아주 많이 섞여 있다는 걸 그 누구라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누구나 퇴사하고, 누구나 여행하고, 누구나 꼰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바야흐로, 부캐 전성시대가 되었다는 것 또한 말이다.


하여, 이제는 '부캐'라는 그 말은 너무나 흔하고, 다들 부캐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는 강박이 서서히 몰려오고 있다.


왜 부캐 전성시대가 되었을까?


TV 프로그램은 시대에 꿈틀거리는 현상을 잽싸게 잡아채어 콘텐츠로 승화시다.

유재석 씨가  여러 부캐로 이끌어 가는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한 사람이라는 걸 누구나 알지만, 대중은 알아서 그 캐릭터들을 구분하고 그들에 자연스럽게 몰입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부캐 전성시대가 된 걸까?


부캐는 원래 게임에서 유래했다.

한 사람이지만, 여러 아이디와 계정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척 게임 캐릭터를 키우거나 관리하는데에서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심리적으로 사람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재밌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다양한 개성과 능력을 뽐내고 싶어 한다. 하나만 잘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를 잘하고 싶어 하고 이 모든 것을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능력 있어 보이고, 뭐든 잘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의 페르소나를 은연중 바라는 것이다.


또 하나.

사회 경제적 현상으로 바라보면 또한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본의 성장률이 노동 가치의 성장률을 앞섰고, 물가는 저만치 날아가는데 내 월급은 고스란한 시대가 된 것이다. 정규직 일자리는 줄고, 산업의 성장은 정체하거나 후퇴하는 이 마당에 사람들은 가만있을 여유가 없다. 어느새 투잡, 쓰리잡이란 말이 생겨나더니 이것이 자연스럽게 부캐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잘 잡은 부캐로 본업을 능가하는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부캐가 본업이 되어 승승장구하면서.


이렇게 심리적으로, 사회 경제적으로 볼 때 부캐란 현상은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다.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부캐 전성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부캐가 정답인 것처럼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정립이 되면 그것은 폭력이나 강압이 된다.

앞서 살펴봤던 퇴사, 여행, 꼰대라는 현상과 개념을 봐도 그렇다. 나만 퇴사 안 하는 것 같고, 한 회사를 열심히 오래 다니면 내가 이상한 것 같고. 이직이나 새로운 도전 없이 무미건조하게 삶을 사는 것 같고. 남들 다 가는 여행이라도 가야 하나 고민하고. 그러다 진정 원하는 여행이 아니라, SNS에 증거로 남기기 위한 여행을 허겁지겁 다녀오고. '꼰대', '라떼' 하니까 자신이 꼰대가 되어 가는 줄은 모르고 남을 꼰대라 힐난하기 일쑤고.


나는 이것이 이데올로기의 함정이자 한쪽으로의 쏠림이라 생각한다.

어느 한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릴 때, 그 본질은 오염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여행'이 한창 시대의 화두였을 때. 일상을 내팽개치거나, 회피성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여행할 날만을 기다리, 다녀와서는 다시 무기력해지는 삶을 반복하는. 마치, 여행이 정답이라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처럼, 나는 슬슬 '부캐'라는 이데올로기의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리고 있음을 지각한다.

나만 부캐가 없고, 나만 사이드 프로젝트를 안 하고. 나만 스마트 스토어를, 주식을, 부동산을 안 하고 있는 느낌. 이러다가 나만 벼락 거지가 될 것만 같다는 불안감은 많지 않은 월급과 저만치 날아가는 집값을 보며 더 커진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잠식된 영혼은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한다.


본업의 중요성은 망각한 채, 나도 이걸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에 이것저것을 찔러본다.

그러다 당장 되지 않는 것들에 실망하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오면 마치 여행을 다녀와 일상을 마주하는 것과 같이 무기력해짐을 반복한다.


마치 부캐가 정답인 것처럼.

부캐가 있어야 자신이 완성되는 것처럼.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지를 돌아봐야 한다.


부캐와 사이드 프로젝트는
본캐와 본업이 있어야 성립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게 있는데, 부캐는 나와 무관해야 한다던가 사이드 프로젝트는 진저리 나는 본업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나의 다른 모습 또한 나로부터 시작한다. 유튜버로 성공한 신사임당이나 대도서관이 좋은 예다. 그들의 본업은 방송과 연관이 있었다. 그 혹독한 본업의 시절이 없었다면, 유튜브 방송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꼭 방송 경험이 없더라도,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우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나 또한 직장을 다니며 여권의 책을 출간하고 강연을 하고 있지만, 내 책과 글의 절반 이상은 가장 두껍고 무거운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에 대한 것들이다.

즉, 부캐와 사이드 프로젝트 모두 본캐와 본업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직장 내공>에서 언급했듯이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보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해야 하는 일'에서 배우고 얻은 것들이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일상은 본질, 여행은 삶의 힌트.
본업은 본질. 부캐는 삶의 힌트.


<직장 내공>에 '여행이 정답은 아니야'란 글이 있다.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여행에만 몰두하는, 한쪽으로의 쏠림을 바로 잡고자 스스로에게 던졌던 말을 담은 글이다. '부캐가 정답은 아니야'란 제목을 짓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다.


여행은 결국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하는 삶의 힌트다.

부캐와 사이드 프로젝트 또한 본캐와 본업의 탄탄함을 바탕으로 시작되고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다 부캐와 사이드 프로젝트가 커지면, 그것들을 본캐와 본업으로 삼으면 된다.


우리네 직장인은 언젠간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를 벗어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거듭 강조하듯이 본캐를 망각한 부캐는 이도 저도 안될 확률이 매우 높다.

나는 '작가'와 '강연가'라는 호칭을 얻고 나서 언제 회사를 그만둘 거냐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데, 내 대답은 한결같다. 절대 직장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고, 젖은 낙엽과 같이 책상을 붙들고 버틸 것이라고. 지금 내겐 이것이 우리 가족을 책임질 소중한 본업이며, 이 본업으로부터 얻고 깨닫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바 나는 내 본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본업을 흔드는 사이드 프로젝트는 거부할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러한 철칙을 세우니, 오히려 본업의 역량은 탄탄해지고 사이드 프로젝트와 본업은 상호 보완 관계가 되면서 본캐와 부캐 모두가 동반 성장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다.




나는 모든 직장인들이 본업을 탄탄히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멋있는 부캐를 하나 둘 만들어 갔으면 한다.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에만 스스로를 가두어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다른 나, 내가 모르던 나.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를 발견해나가길 응원한다.


다만 유념해야 할 것은.

그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캐와 사이드 프로젝트는 없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정답'은 나 자신과 본업이다.

탄탄한 그 기초를 바탕으로 부캐와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어 나갈 때. 혹은, 아직 때가 아니어서 본업에만 충실할 때. 그것이 나에게는 '정답'이 되는 것이다.


시대적 이데올로기의 쏠림에 흔들리지 말고.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과 같이 무게 중심을 잡고 하루하루 성장해 나아가기를.


그리하여, 모든 직장인들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자신을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부캐가 있건 없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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