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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2. 2021

역량을 올리는 궁극의 기술, 페르소나 돌려쓰기

직장생활이라는, 모두의 미션 임파서블을 완수하길 바라며!

미션 임파서블과 가면


톰 크루즈가 출연하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액션뿐 아니라 요소요소에 반전을 선사하는 플롯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액션엔 주로 총격전이나 카체이싱이 주를 이룬다. 또는 몸을 사리지 않는 그의 스턴트 연기가 회자되기도 하는데, 영화 장르가 그러한 만큼 전반적인 재미는 주로 이 액션에서 온다. 그러나 이러한 액션에도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두 시간 내내 총을 쏘고, 차를 추격하고 닥치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순다면 영화는 재미를 잃고 보는 이 피로선사할 것이다.


그럴 때 주로 나오는 것이 바로 요소요소의 반전이다.

전이 영화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장치라면, 요소요소의 반전은 영화의 강약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미션 임파서블 영화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가면' 씬이다.


주인공인 줄 알았던 사람이 악인이고, 악인인 줄 알았던 사람이 주인공인 장면들.

이 모든 건 손을 한쪽 턱으로 가져가 가면을 벗어던지는 전형적인 행동으로 완성된다. 가면을 벗는 순간 약간의 부조화가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미리 알아채지 못한 관객은 할 말이 없다. 그러려니 하고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재밌는 것은 영화가 거듭할수록 가면의 수준과 기술이 날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어설픈 고무 재질로 시작해, 상대의 목소리를 담아내거나 3D 프린터로 즉석에서 가면을 만들어내기까지.  흥미진진하알면서도 속을 수밖에 없는 장면과 장치가 극의 흐름과 재미를 한층 배가시킨다.


직장인과 가면


직장인이란 가면은 가장 두껍고 가장 무겁다.

원래 먹고사는 것과 관련된 페르소나는 늘 그렇다. 쓰고 싶지 않아도 써야 하고, 그 무게가 상당하며 그 어떤 내 다른 가면들을 압도할 정도로 두껍다.


때론 그 가면이 너무 버거워 절망을 하기도 다.

아침 알람이 울리면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것도 그 가면의 힘이다. 몸과 마음은 이불속으로를 외치지만, 먹고사는 것과 연관된 그 가면이 나를 기어코 사무실 책상에 앉혀 놓는 것이다.


사실, 초심을 돌아보면 나는 그 가면을 너무나 쓰고 싶었다는 걸 깨닫는다.

직장인이라는 가면을, 목에 거는 사원증을,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을 받을 수 있다면 나는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거라 생각해던 적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두껍고 무거운 가면이 이제는 싫지 않다. 그 가면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선가 늘어져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꾸준하지 못하고 게으른 나를 일으켜 내 역량을 펼칠 수 있게 해 준 것이 바로 직장인이라는 내 페르소나다. 내가 알지 못했던 능력을 일깨워 주기도 하고, 억지로 해야 하는 일에서 재미와 보람을 찾기도 했으며 나는 미처 몰랐던 능력까지 발견하게 해 주었으니.


이보다 더 고마운 존재가 또 있을까 싶다.


역량을 올리는 궁극의 기술,
페르소나 돌려 쓰기


직장은 무대와 같다.

나는 어떤 역할을 해내야 한다. 대리면 대리, 부장이면 부장, 상무면 상무의 역할을 해야 한다. 내 고유의 원형, 즉 내 본래 모습을 줄여서라도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하기에 그 역할은 '연기(acting)'와도 같다. '맡은 인물의 행동이나 성격을 창조하여 표현하는 것'을 '연기'라 하니, 이보다 더 찰떡같은 상황 없다.


다시, 직장은 무대와도 같다.

모두가 저마다의 역할극을 하고 있는.


연기를 잘하려면 가면을 잘 써야 한다.

직장 경험이 길지 않았을 때 나는 하나의 가면만을 고집했다. 그리고 그 가면이 '나'라고 믿었다. 그러했기에 받았던 상처와 아픔이 고스란하다.


그러다, 미션 임파서블의 가면이 회를 거듭하며 발전하듯이 내 가면도 진화해야 함을 느꼈다.

직급이 올라가고, 사회 경험이 쌓이니 그럴만한 여유가 생겼다. 의도적으로 다른 페르소나를 썼다 벗었다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어떤 상황이 되거나 어려움을 맞이하게 되면 그에 적절한 사람의 페르소나를 빌려 온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함께 일하고, 싸우고, 협업하거나 갈등한 사람들이 참 많다. 그들에겐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나는 그 모든 것을 수용하려 노력한다. 누군가의 장점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역량을 발휘하게 해 주고, 또 누군가의 단점은 내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변곡점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디테일에 약한 편이다.

표독스럽고 독하지도 않다. 사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꼭 그러해야 할 때가 분명 있다. 살아 남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나 스스로의 성취를 위해서. 직장은 내가 가진 페르소나에 맞는 일을 주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예고 없이 주어지는 일에 맞추어 내 페르소나를 바꿔 써야 한다.


그럴 때 나는 내가 경험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디테일했던 사람. 표독스러웠던 사람. 독하고 독했던 사람.

'이런 상황에서,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했을까?'


그들의 가면을 차용하여 나는 그렇게 반응하고 행동한다.

내게 없는 것. 내가 부족한 것. 나라면 하지 못했을 반응과 행동들. 내 원형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나는 그들의 페르소나를 마음껏 차용한다.


상황과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나는 그것들을 이리저리 돌려 쓴다.

체득이 덜 되었으면, 그런 척이라도 한다.


그리하여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하다.


한 가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내가 누군가로부터 느낀 단점의 가면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사건건 의심을 하는 상사가 있었는데,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그 상사의 페르소나를 벌써 여러 번 사용한 적이 있다. 직장에선 그 누구도 믿지 못할 때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휴가를 자주 내던 팀원이 있었는데, 평소라면 나는 이 친구가 쉼이 필요했겠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사의 페르소나를 쓰고 보니 이 팀원이 이직이나 퇴사 등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그 직원은 자신이 하던 일을 대충대충 하다가 두 달 뒤 다른 회사로 직했다.




이처럼, 다른 이의 페르소나를 차용하여 돌려 쓰는 것은 힘겨운 직장 생활을 하는데 꽤 도움이 된다.

단, 주의할 것은 내 페르소나를 공고히 할 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 원형이 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페르소나를 돌려쓴다는 건 어불성설이자, 자아 분열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궁극의 기술로 페르소나 돌려쓰기를 하기 위해선, 우선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내 페르소나는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를 자각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반응을 보이고, 저런 문제가 발생할 때 내가 행동하고 대처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나는 누구보다 나에게 뛰어나야 한다. 그 시작점이 바로 '나'와 내 '페르소나'를 깊이 바라보고 곱씹고 알아차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직장엔 참 배울 것이 많다.

그만큼 온갖 페르소나가 여럿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은 또 어떤, 내가 가지지 못한 페르소나를 발견할지 사뭇 설레기도 한다.


페르소나 돌려쓰기와 함께.

직장생활이라는, 모두의 미션 임파서블을 완수하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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