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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05. 2021

멕시코에는 왜 운전면허시험이 없을까?

이것은 멕시코라는 나라의 청렴도와 관계있다.

멕시코의 교통 문화는?


70년대 ~ 90년대 우리나라의 교통문화는 참으로 살벌했다.

그야말로 차가 우선이었다. '사람 나고 차 났지, 차 났고 사람 났냐'의 명제가 통하지 않을 때였다. 머리를 먼저 들이밀거나, 목소리가 크면 이기는 시대였다. 더불어, 차가 보행자를 칠 뻔하면 운전자가 되레 큰 소리를 치고 오히려 보행자가 머리를 조아리는 문화였다. 사실, 아직도 우리 사회엔 이러한 분위기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다. 골목에서 사람을 칠 뻔한 운전자들의 표정을 보면, '아... 차가 오는데 왜 조심하지 않는 거야?'란 짜증이 가득 담겨 있다.


그 잔재를 가지고 네덜란드에서 운전할 땐 가히 딴 세상에서 운전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앞차가 어물쩡거리다 내 차가 횡단보도에 살짝  걸친 적이 있었는데, 보행하는 사람들은 운전석에 있는 나를 벌레 보듯 바라보며 지나갔다. 다행히(?) 내차는 아니었지만, 횡단보도를 반 이상 머금은 어떤 차는, 보란 듯 한 보행자가 자동차 보닛을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더불어, 동네나 골목 어귀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면 차는 무조건 정지했다. 그곳은 철저히 사람 중심이었던 것이다.


자, 그렇다면 멕시코는 어떨까?

스페인어를 쓰니 그 문화가 유럽을 닮았을까? 아니다. 우리나라 (90년 대도 아니고) 70년대를 닮았다. 그러니까, 차가 우선이란 이야기다. 찻길을 건너거나 골목을 거닐 때, 사람이 차를 피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멕시코에선 매년 약 17,000여 명이 도로에서 사망한다.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사람이 치여 목숨이라도 잃으면,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아도
미안하지 않은 분위기


차가 우선인 건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도로에는 왜 대부분의 차들이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는 것일까? 심지어는 우측 지시등을 켠 차가 왼쪽으로 가기도 하고, (오늘도 목격했는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교차로에서 당당히 후진하는 차들도 있다.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아도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운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로는 울퉁불퉁 가지런하지 않고 차선도 있다 없다를 반복한다.

그러니 나 또한 방향 지시등을 켜도 그것이 내 의도와는 다르게 반영될 때가 있다. 그래서 애매하다 싶을 땐 요즘 나도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는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자동차 전용 도로로 진입하는 구간이다.

달려오는 차들이 우선인 건 인정하나, 조심성이라곤 전혀 없다. 진입하는 차와 거의 부딪칠뻔하는 모습도 여러 번 연출된다. 또는, 진입하는 차 중에서도 그 룰을 잘 모르는지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들이미는 경우도 있다.


어떤 차가 우선이고, 어떤 차가 나중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대체 멕시코는 어떻게 면허 시험을 치르고 있기에 이런 대환장 파티가 도로에서 벌어지는 것일까?

인명에 대한 안정과 교통 문화의 성숙을 위해선 엄격한 시험을 치러야 하지 않을까?


놀랍게도, 멕시코엔 운전면허 시험이 없다.
대체 왜?


그런데, 놀랍게도 멕시코엔 운전면허 시험이 없다.

시험제가 아니라 등록제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인명 피해도 많이 생기고 있고, 교통 문화도 혼란스러운데 왜 시험을 강화하지 않는 것일까? 오히려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시험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것은 멕시코라는 나라의 청렴도와 관계있다.

한국투명성 기구의 최근 리포트에 따르면 세계 180개국 가운데 멕시코의 국가 청렴도 순위는 124위다. 참고로 한국은 33위이고, 스페인은 32위다. 네덜란드는 8위, 미국은 25위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멕시코에서는 면허 취득 과정에서 부정행위로 시험을 통과하거나, 뇌물을 주고 면허증을 취득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2003년부터 면허 시험을 폐지했다. 신분증과 수수료만 있으면 운전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아무런 제약 없이 면허증이 발급되자 지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교통 규칙을 모르거나 운전 기술이 미흡한 운전자들이 지금의 멕시코 운전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여 2017년 말, 멕시코 시티는 운전면허 시험제도를 부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또한 교통규칙 이해와 운전기술 능력을 묻는 필기시험 수준에 머무를 뿐, 도로 주행을 하는 조건은 아니라는 점에서 당분간은 현재의 교통 문화가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멕시코 시티의 교통체증은 악명 높다.

비라도 많이 오면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도로엔 물 웅덩이가 하나 둘 생긴다. 이를 피해 가기 위해 차들은 엉금엉금 기어하고. 그러면 교통 체증은 더 심해진다.


어렸을 때 멕시코에 살다가 20년이 지나 다시 멕시코에 온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그때와 지금 바뀐 게 거의 없어요. 2층 고가 도로가 생긴 것 빼고는."


빽빽하게 차들이 들어찬 교통체증 도로 위로는 또 하나의 도로가 있는데, 이것의 정체는 바로 '유로도로'다.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면 교통체증이 덜한 곳으로 갈 수 있는 달콤한 유혹의 도로.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 체증이 있더라도 일반 도로를 택한다.


안전과 직결되는 면허 시험의 부재.

울퉁불퉁하고 물이 고이는 도로로 인한 교통 체증의 심화.

20년 전과 달라지지 않은 교통문화와 도로 위에 생긴 2층 유료 도로.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방향 지시등을 켜고 안 켜고가 아니라, 바로 '방어운전'이 아닐까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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