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욕망은 너무나 강력해서 타임머신에 대한 소설이나 영화가 즐비하다. 과거를 바꾸면 현재와 미래가 바뀌게 되는 위험천만함을 공통적으로 내포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의 바람을 안고 주인공은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이 과거로 달려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과거를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후회'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과거엔 우리의 수많은 후회가 숨 쉬고 있다. 아니, 언제나 과거에서 펄떡이고 있는 후회와 아쉬움은 현재의 우리를 지배한다. 그러니,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과거로 달려가 그것들을 잠재우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러니 타임머신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마음을 달래고, 과거로 가봤자 현재와 미래가 꼬이게 되니 타임머신을 (못 타는 처지이지만) 안타는 게 훨씬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과거의 후회와 아쉬움을 잠재울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타임머신을 탄 것과 다름없다. 즉, 과거로 가지 않고도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 무슨 비약일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이게 정말이라면 타임머신을 만들 필요도 없고 과거로 돌아가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되니 훨씬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시도가 아닐까.
종이와 펜.
아니면 책상과 노트북이면 충분하다. 바로, 글쓰기로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있다.좀 더 정확하게, 아직도 과거에 남아 펄떡이며 오늘의 나를 괴롭히는 '후회'와 '아쉬움'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이다.
'후회'와 '아쉬움'은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때, 더 발광한다.
도망도 가보고, 피해도 보지만. 그럴수록 문득 가슴팍을 때리고 마음속 저 깊이 자리를 잡는다. 이어지는 이불킥으로 하루하루는 피폐해지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을 바꾸어 그것들을 받아들여 본다.
지금의 내가 볼 때, 과거의 '나'는 멍청하고 어리석고 바보 같아 보이지만 그때의 나에겐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결과를 알고, 좀 더 자란 내가 예전의 나를 나무라는 것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이다. 과거의 나에게 손을 내밀고, 그 내민 손을 맞잡아 내가 나를 위로하는 그 과정을 글로 써보면 어떨까. 과거의 나와 내가 했던 행동을 포용할 수 있게 된다. 생각과 마음이 바뀌고, 바보 같았다고 생각했던 내 선택과 언행을 마침내 거둬들일 수 있는 것이다.
후회와 아쉬움이 사라진 그 순간.
이미 과거는 바뀌어 있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과거는 그대로 두고, 과거의 나에게는 미래인 지금의 나를 온전히 세운 것이다. 과거를 터치하지 않았으니 부작용도 없다. 지금의 내가 바뀔 수 있다면 과거를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목적은 지금의 나를 바꾸고 싶은 것이니. 이미, 현재의 나는 바뀌어 있으니.
글쓰기는 이처럼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현재를 다독이며,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게 한다.
한 자 한 자 글을 써내려 가다 보면 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간다. 과학적인 법칙의 거스름이 아니니 부작용은 없다. 물리적 유영이 아니니 한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