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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19. 2021

프리다 칼로에게 보내는 편지

초면에 당신의 집을 다녀왔습니다.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나를 그린다"


안녕하세요, 프리다 칼로 씨.

당신은 (당연히) 저를 잘 모르겠지만, 저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자세히 그리고 잘 알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가 당신을 처음 알게 된 건, 유럽 출장길 비행기 안이었어요. 당신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는 전혀 몰랐어요. 다만 어렴풋이 당신에 대해 알고 있던 건, 인상 깊은 일자 눈썹과 전신 지지대에 갇힌 당신의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초면에 실례이지만 오늘 당신 집을 다녀왔습니다.


어쩌다 보니 제가 멕시코에 와있게 되었거든요.

직업 특성상 해외 주재를 하게 되었는데, 이전 제 주재지는 유럽 네덜란드였습니다. 그래서 반 고흐 씨의 발자취를 엄청 따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가 묻힌 프랑스 어느 마을 어귀까지 찾아갈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이렇게 영감 가득한 사람들에게서 얻는 감동과 통찰을 좋아하나 봅니다. 당신이 그림을 그렸듯 저 글을 쓰고 있거든요.


중남미라는 나라, 특히 멕시코는 제 인생 리스트에 없던 무엇이었습니다.

업무나 언어로는 아무 접점이 없는 제가 여기에 와있다니. 아직도 잘 믿기지가 않아요. 그러나, 굳이 접점을 찾자면 그 비행기 안에서 만난 당신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먼저, 당신의 고통에 애도를 표합니다.

6살 때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고, 1925년 일어난 교통사고로 당신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간 강철봉이 척추와 골반을 관통해 허벅지로 빠져나온 걸 알고 있습니다. 이후에 당신은 전신 지지대로 몸을 고정하고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두 손으로 그림을 그려야 했죠.


많은 평론가들이 만약 당신이 그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멕시코의 진보적인 여성 의사로 살아갔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말일까요? 삶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겠죠. 당신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마음고생을 한 것. 제가 갑자기 멕시코에 와있는 것. 글쓰기와 아무런 상관없던 제가 작가가 된 것처럼.


그러나 분명한 건, 당신의 고통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겁니다.

전신 지지대는 고통을 다스리는 도구가 아닌, 당신의 천재성과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갑옷처럼 보였습니다. 몸은 그 안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그로 인해 당신은 마음속에 있는 걸 무지막지하게 쏟아 내었으니까요.

몸은 갇혔지만, 그 나머지 것들은 자유로웠던...


당신의 고통을 알지 못한 채 이렇게 말하는 게 미안하긴 합니다만, 아마 당신도 당신의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여러 말들이 사람들에게 전해져 영감을 불러일으킬 거란 걸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의 평생소원은 단 세 가지였죠.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


이렇게 말이죠.

당신의 고통이 예술로 승화되고 있음을 당신도 잘 알고 있던 겁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온전치 않은 몸. 이어진 유산의 고통.




당신이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

침대 위 거울을 통해 자신과 만나고 대화했었을 그때를 상상해봅니다.


자주 혼자이기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그림을 그린다고 하셨죠. 저도 생각이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저도 글을 쓰고 있거든요. 제가 말하고 싶은 페르소나 글쓰기를 프리다 칼로 씨가 잘 설명해주었습니다. 당신도 페르소나 그리기를 했다고 생각하니 분에 넘치게 동질감을 느낍니다.


침대 위 거울 속 자신과 대화했던 프리다 칼로
고통을 이겨내며 그림을 그렸던 프리다 칼로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1954년.

당신은 마지막 일기에 돌아오지 않을 외출에 대해 이야기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47세. 너무 이른 외출이었지만 당신의 고통의 정도를 고려할 때 그것이 짧은 것인지 아니면 과했던 것인지는 제가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죽고 난 뒤.

당신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는 당신이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살았던 코요아칸의 '푸른 집'을 나라에 기증했습니다. 그 덕분에, 초면인 제가 당신의 집을 방문하고 또 당신의 작업실과 침실까지 볼 수 있게 되었죠.




앞으로 저는 당신의 삶을 좀 더 깊게 살펴볼 요량입니다.

오늘 당신은 저에게 크고 많은 영감을 주었거든요. 예술인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그 무엇이, 저에게도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몸과 사랑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저는 당신의 이름 '프리다'가 '자유'를 뜻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어쩌면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운 영혼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럼, 당신의 삶과 사랑 그리고 작품에 대해 좀 더 시간을 두고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 멕시코에서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지금 있는 그곳에서, 육체의 고통 없이 평안한 날들이 이어지길 바라며.


프리다 칼로의 푸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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