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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6. 2021

멕시코엔 나초가 없다.

멕시코엔 '우리가 생각하는' 나초가 없다.

Charely, there is no Nacho menu in Mexico!


마감에 정신없던 어느 날.

그래도 사람은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함께 고생하고 있는 멕시코 현지 팀원들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멕시코에 부임하고 나서 정신없이 달려온 터라, 팀원들과는 업무 이야기만 했을 뿐 그들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으니 이 참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팀원 중 한 명이 말 그대로 멕시코 다우면서도 힙한 식당 하나를 제안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말 멋진 분위기와, 맛있는 식사 그리고 업무에 가려진 팀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메뉴를 고르려는 도중 한 팀원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찰리(내 영어 이름), 나초 좋아하죠?? 그런데 멕시코엔 나초 메뉴가 없어요!"


어? 이게 무슨 소리일까.

멕시코에 나초가 없다니. 한국에 김치, 또는 밥이 없다는 말과 뭐가 다른 걸까를 생각하다 뇌 회로가 잠시 멈춘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던 메뉴판을 다시 들여다봤다.

정말 '나초'란 메뉴는 따로 없었다.


이런,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정녕 멕시코가 맞는 걸까?


네덜란드엔 '더치페이'와 '더치커피'가 없다.


우리는 한 나라에 대한 얄팍한 지식으로 그 나라를 판단하고 결론 내린다.

가보지 않고, 살아보지 않고, 살더라도 깊이 살펴보지 않으면 그곳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네덜란드 주재원으로 있을 때에도 이와 같은 깨달음을 얻었고, 그 이야기는 고스란히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에 적어 놓았다.


네덜란드에 부임했을 때, 내 첫 질문은 정말 더치 사람들은 데이트할 때에도 '더치페이'를 하느냐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더치페이'란 개념은 따로 정립되어 있지 않았고, 역으로 그게 뭐냐고 나에게 묻는 네덜란드 친구들도 있었다. 더불어, 어느 카페나 식당을 가도 '더치커피'는 어느 메뉴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네덜란드까지 가서 더치커피 못 먹어봤다고 조롱을 받을까 열심히 찾아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네덜란드엔 '더치페이'와 '더치커피'가 없으니. 그 이유는 내 브런치와 도서에 상세히 적어놨으니, 시간이 된다면 한 번 찾아보면 좋겠다. 요약하자면, '더치페이'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만든 말이 아니라, 네덜란드 사람들을 비하할 목적으로 영국 사람들이 만든 말이고 '더치커피'는 배 위에서 어쩔 수 없이 물을 끓이지 않고 찬물로 커피를 내리는 것에서 착안한 일본 커피 회사의 네이밍 결과다.


그때와 같이 다시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다면, 왜 멕시코엔 '나초'가 없는 걸까?


'나초'는 스낵이 아니라, 사람이다.


텍사스 근처 멕시코 코아우일라주의 피에드라스네그라스.

빅토리 클럽이라는 식당이 있었다. 식당 영업이 끝난 시간, 근처 던컨 요새에 주둔하던 미군의 부인 십여 명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지만 손님을 놓칠 수 없었던 식당 종업원은 그들을 위해 부엌에 있는 재료로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내는 기지를 발휘했다.


남아있던 토르티야를 세모꼴로 자르고, 체다치즈와 할라피뇨를 곁들어 내었다.

종업원은 'This is the special nachos'라고 설명했다.


그 종업원의 이름은 바로 '이그나시오 나초 아나야'였다.


이후 그는 피에드라스네그라스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Nacho's restaurant'를 개업한다.

그의 나초 조리법은 1954년 발행된 'St.Anne's Cookbook'에도 수록이 되어 있다. 이후 나초의 인기는 텍사스 전역을 휩쓸었고 영어 단어 '나초(Nachos)'는 1949년 'A taste of Texas'에 실리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초는 '스낵'이 아니라 그 이전에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그나시오 아나야는 1975년에 사망하였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피에드라스네그라스에는 청동상이 세워졌다. 더불어 10월 21일은 세계 나초의 날로 지정이 되었고, 아나야의 아들인 이그나시오 아나야 주니어는 아버지의 사후 이후 2010년까지 해마다 열리는 나초 경연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이그나시오는 그의 요리에 대한 법적 권리를 따로 주장하지 않았고, '나초'는 여전히 공개 도메인으로 남아 있다.

나초는 우연에 의한 혁신적인 요리였고, 저렴하고도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음식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2019년 8월 15일.

구글은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념을 로고를 제작하여 공개하기도 했다.

이그나시오 아나야 가르시아 탄생 124주년 기념 로고 by Google


'나초'가 아니라 '토르티야'


"그럼, 나초가 아니라 뭐라고 그걸 부르나요?"
"토르티야, 찰리."


결국, 나초의 정체는 토르티야였다.

나초 메뉴가 탄생한 일부 지역에선 '나초'라는 말을 쓰지만, 그 말을 더 널리 쓰는 건 오히려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이다. 영어 표기 '나초'가 글로벌화된 것이다. 우리 또한 '나초'라는 말을 들으면 이와 같은 배경보다는 나초 과자나 치즈와 할라피뇨를 곁들인 메뉴를 떠올리니까.


토르티야는 우리나라의 주식인 '밥'과 같이 멕시코 사람들이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방법이다.

팽창제나 발효 없이 옥수수로 만드는 납작 빵의 일종인데,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밀가루로 만든 밀 토르티야도 이제는 흔해졌다.


토르티야에 대해선 별도로 좀 더 깊이 다뤄보고자 한다.

우주인들이 먹는 주된 메뉴 중에 토르티야가 필수로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왜 우주인들이 토르티야를 즐기는지 그 이유도 궁금하다. 더불어, 토르티야는 경제 현황을 대변하는 '지수'로도 활용된다. 즉, 멕시코인들의 먹고사는 생생한 정서가 담긴 음식 이상의 상징이므로 더 알아갈 가치는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단편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 단편으로 한국을 통째로 오해하거나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으면 어쩌나. 사실, 그러한 걱정을 하기에 앞서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맞이 하는 사람들과 사회, 문화 그리고 생활들을 먼저 한 발자국 더 다가가 알아가는 게 내 임무라 생각한다.


멕시코엔 우리가 생각하는 '나초'가 없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된다.


이렇게 멕시코에 나는 오늘도 한 걸음 더 다가간다.


이어지는 글: 그렇다면 멕시코에선 대체 '나초'를 뭐라고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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