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티야는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는다.
우주식 매뉴얼에 토르티야는 일주일에 두 개 정도로 먹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하루에 두 개씩 먹고 싶다.
1985년 최초의 우주 왕복선에는 우주식으로 토르티야가 실렸다.
현재는 가장 인기 있는 우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우주인들이 우주에서 생활할 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쓴 무기명 일지에는 이 납작 빵이 자주 등장한다.
대개는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떠올려볼 때 그것은 토르티야라는 내용과, 매뉴얼대로 일주일에 두 개가 아니라 하루에 두 개를 먹고 싶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우주 탐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로켓이나 우주 정거장과 같은 하드웨어 조건일 수 있으나, 더불어 이마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우주 비행사들의 심신 안정일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토르티야는 몸의 영양가는 물론, 먹는 즐거움과 정서적 안정까지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토르티야는 우주인들의 가장 인기 있는 기내식(?)이 되었을까?
그전에, 토르티야가 뭐지?
우리나라에선 보통 '또띠야'라고 부른다.
내가 알고 있던 얕은 지식으로도 그것은 또띠야였고 이게 나초, 타코, 브리또, 퀘사디아와 무슨 차이인지 전혀 몰랐다. 지식이 얕으니 그것들을 고만고만해 보였고 맛을 보지도 않은 채 나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꺼려왔다.
토르티야는 전통 멕시코 요리다.
전 세계 각 국가는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그것이 '밥'이고 유럽은 '감자'이며 멕시코는 '토르티야'인 것이다. 토르티야는 옥수수 혹은 밀가루로 빚은 얇고 납작한 빵이다. 어원은 스페인어 'torta(둥글 납작한 빵)'에서 유래하여 변형되었다.
멕시코 남부에선 옥수수 가루로 만들고, 일부 옥수수 재배가 어려운 지역에서는 수입한 밀가루로 토르티야를 만든다.
위에 내가 말한 음식 외에 거의 다른 모든 멕시코 요리에도 이 토르티야는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 다시 말해, 결국 한국의 '밥'과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세상 모든 재료를 감싸 안을 기세로 토르티야는 언제나 그 포용성을 자랑한다. 재료를 위에 올리든, 감싸든, 말든. 그것을 찌든, 볶든, 삶든, 튀기든. 그 다양한 조리법과 곁들여지는 재료들이 다양한 맛과 풍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토르티야는 무발효 빵이다.
그래서 만들기도 간단하다. 멕시코에서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 토르티야를 높게 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용이한 밀가루 토르티야도 널리 대중화되고 있는 추세다.
인간이 자연스러운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식사는 평소보다 소중한 것이 된다.
- Nasa 조언가 잭 서스타 -
탄수화물이 사람에게 주는 심신의 위로는 가히 대단하다.
마음이 힘들 때 밥한 술 크게 떠 입에 넣으면 호랑이 기운이 솟는 걸 체험한 적이 (한국인이라면) 분명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 말하는 '밥심'이기도 하다.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유럽 여행길(특히 네덜란드)에서 감자튀김 집을 찾아 김이 솔솔 올라오는 감자튀김을 입안 한가득 넣으면 그제야 몰려오는 안도감은 신체를 넘어 영혼까지 도달할 정도다.
기본적으로 탄수화물엔 당분이 들어있다.
그러나 초콜릿이나 다른 설탕 범벅의 것들과 탄수화물이 주는 위로는 다르다. '포만감'때문이다. 사람은 포만감을 느낄 때 심신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자비심은 곳간에서 나오고, 인내심은 탄수화물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사실, 이것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탄수화물은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돕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맛과 에너지. '심(心)'의 안정과 '신(身)'의 포만감을 함께 줄 수 있는 토르티야는 외롭고 버거운 임무를 수행하느라 자칫 인간성을 잃을 수 있는 우주 비행사들에겐 필수 음식이어야 한다.
맛과 영양분 아니라 우주식은 부패, 식중독, 식상 등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우주식의 대부분은 'Freeze-Dried' 공법으로 만들어진다. 우주 비행사는 그것을 뜨거운 물에 데워 먹는다. 'Freeze-Dried'공법이 불가능한 음식은 '가열 안정화(Thermostabilised)'하여 모든 미생물을 제거한다. 또는 거의 모든 음식을 멸균 챔버에 넣고 20분 동안 섭씨 100도 이상의 스팀으로 가열한다.
게다가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까지 보관해야 하는 상황 특성상, 그 기간 동안 살균-영양가-맛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 게 우주식이다 보니, 토르티야는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완전식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토르티야는 빵 부스러기가 날아다니지 않는다.
무중력 상태에서 미세한 빵부스러기는 기계 결함이나 오작동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단순함이 많은 걸 지배할 때가 있다.
세상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로 굴러간다 생각될 때가 있지만, 알고 보면 단순하고 친근하고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것들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토르티야의 그런 점이 좋다.
그것만으론 맛을 잘 느낄 수가 없지만, 곱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오고 세상 그 어떤 재료들과도 어우러져 다양하고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그 존재는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토르티야는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는다.
부자에겐 다양한 맛을 선사하는 음식이 되고, 빈자에겐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어루 달래주는 저렴하고도 훌륭한 한 끼가 될 테니까.
실제로 빈부 격차가 심하고 최저임금이 낮은 멕시코 특성상 토르티야 가격은 경제 상황의 주요 지표로 쓰이기도 한다.
그렇게 토르티야는 우주 비행사뿐만 아니라, 멕시코 사람 누구에게나 삶의 위로가 되어주는 진정한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