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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17. 2022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첫 술이 가장 맛있다.

첫술의 감동은 시작 중독을 닮았다.

첫술의 위력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패널에게 맛집 음식 한 숟가락만 허용하는 벌칙이 주어졌다.

그 패널은 고군분투했다. 그 작은 숟가락에, 어떻게든 더 많은 음식을 담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보는 내가 다 안쓰러웠다. 그러나 차곡차곡 쌓인 음식이 그 패널의 입에 들어가는 순간, 그 안쓰러움은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얼마나 맛있을까?'

침을 꿀꺽 삼키며 나는 그 생각을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첫 술의 위력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많이 먹고 못 먹고는 나중 문제다. 왜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아주 배고플 때, 김 솔솔 올라오는 하얀 쌀밥을 큰 숟갈로 퍼서 입 안에 슬쩍 넣을 때. 따듯하고 포만하며 어쩐지 달달한 그 맛이 온 입과 마음 그리고 더 나아가 영혼까지 달래주는 것만 같은 그 맛. 거기에 쭉 찢어 먹는 첫 김치와의 조화는 한국인이라면 언제나 그리워하는 맛이다.

라면은 어떤가. 갓 끓인 라면을, 후후 불어 한 젓갈 후루룩 빨아들이고 나면 그 처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무엇이다. 라면을 발명한 사람에게 노벨상을 주어야 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유. 


그렇게, 첫술의 감동은 위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첫술의 감동은 시작 중독과 닮았다.


그런데 한 숟갈, 한 젓갈이 더 해지다 보면 생각은 바뀐다.

사람이란 참 간사한 게,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듯이. 첫 술을 먹을 때와, 그다음은 확연히 달라진다. 음식을 모두 먹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첫 술의 감동은 온 데 간데없고, 부른 배를 움켜 잡고 후회하기 일쑤다. 왜 이렇게 많이 먹었을까? 살찌면 어쩌지? 소화가 잘 안 되네...라는 말을 연신 해댄다. 


이것을 보며 나는 '시작 중독'이란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을 꾸준히 이어가진 못한다. 그러다 또 다른 시작에 흥미를 가진다. 또다시 그것은 흐지부지 된다. 마치, '첫 술'을 맛있게 먹고 나서는 그 끝이 좋지 않은 모양새와 같다.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말이 있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그리고 꾸준하게 하라는 말이다. 문제는 첫 술이 가장 맛있다는 것이다. 정말 맛있다. 그래서 문제다. 뭔가를 시작할 때에도, 벅찬 가슴으로 시작하지만 한 술, 두 술 뜨다 보면 첫 술의 맛이 점점 덜해지는 것처럼 의지 또한 그렇게 옅어진다. 그나마, 몸과 건강을 생각하며 적당히 그리고 꾸준하게 음식을 음미하며 섭취하는 건 그나마 낫다. 첫 술과 같은 맛이 아니라며, 아니면 첫 술이 내가 원한 맛이 아니라며 음식을 버리거나 거부하거나 또 다른 음식을 찾아 나서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첫 술의 감동은 '시작 중독'과 닮았다.


첫 술 보다 중요한 것


'몸에 좋은 약은 쓰다'라는 말이 있다.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삶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웬만한 상황들이 그에 딱 들어맞는다. 반대로, 대개 맛있는 건 몸에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달고 짜고 맵고 자극적인 것들은 입에 딱 달라붙지만, 몸은 좋지 않은 쪽으로 변해간다.


첫 술이라고 항상 맛있는 것도 아니다.

첫 술에 아니다 싶으면 아닌 음식도 수두룩하다. 어차피 삶은 우리가 원하는 음식만을 우리 앞에 가져다주지 않는다. 


이쯤에서 내가 깨달은 건, 첫 술의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어느 식단을 먹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내 입맛에 맞는 음식보다는, 사실 그러하지 않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대개 그러한 음식이 몸에는 더 좋다. 경험에도 더 좋고, 내 역량을 쌓아 가는 데에도 더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맛이 없다는 이유로. 당장 내 입맛이 아니라는 이유로. 첫 술이 별로라는 이유로. 반대로, 내가 원하는 첫 술만 원하면서 놓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을까를 돌아보게 된다. 


실제로 그렇다.

냉혹한 현실의 세상은 내가 원하는 맛보다는 봐야 하는 맛을 선사할 때가 더 많다. 자꾸만 우리가 원하는 첫 술을 바라고, 그것에 안주하려는 이유다. 원하지 않는 음식이지만, 살기 위해선 먹어야 할 때가 분명 있다. 먹기 싫었는데, 나중에 그것이 영양분이 되고 몸에 더 좋은 경우도 수두룩 하다. 때론, 저항력을 키우기 위해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할 때도 있지 않은가. 사람은 그러하면서 진화해왔으니까.


그러니까, 첫 술보다 중요한 건 우리는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시작 중독'에서 벗어나는 법


이것을 찬찬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시작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언가를 흥미롭게 시작했는데, 첫 술에서 끝나 버리는 반복. 자괴감이 들 정도로 스스로를 꾸준하지 못한 존재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그 고리를 끊는 방법 말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첫 술이 가장 맛있다'란 명제를 활용해 보자.

첫 술이 가장 맛있다란 말을 양면 하여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첫째, 첫 술이 가장 맛있으니 그것에 속지 말 것.


'시작'에 언제나 포부가 담겨 있다.

희망과 의지도 담겨 있다. 그러나, 첫 술 이후에 오는 맛은 그보다 덜 할 때가 많으므로, 이것을 상기해보면 첫 다짐에 덜 속을 수 있다. 첫 술의 맛이 가장 좋으나,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시작 다음에 올 내 계획들은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다. 내 실천과, 내 노력이 배로 필요하다는 걸 처음엔 알지 못한다. 사실, 처음부터 그다음의 것들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을 해두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시작만 하고 끝을 보지 못하는 일을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 술에 속지 말고. 첫 술에 취하지 말고. 나는 어떤 음식을, 무엇을 위해 먹는가. 내 식단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시야가 필요하다.


처음의 '감정'과 '의지'에 취해, 목표를 너무 높게 잡거나 계획을 너무 빡빡하게 세우지 않는 것이 그 방법이다.

작은 성취를 지속해갈 수 있도록.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인 것과 같이, 계획과 실천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에게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좋다.


둘째, 첫 술의 위력이 가장 크니 그 맛의 의미를 되새길 것.


첫 술은 감동이거나, 또는 이건 아니라는 결정을 빨리 할 수 있는 단초다.

어느 쪽으로든 그 위력은 대단하다. 그렇다면 그 위력을 느끼는 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의미를 뽑아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맛이라면?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첫 술이 가장 맛있다는 의미를 안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배부르려는 욕심보다는 첫 술의 맛을 음미하며, 다음 맛을 기약하는 것. 내가 바라는 일이라면, 그 맛이 덜하더라도 꾸준히 해 나아갈 각오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맛도 때로는 질린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맛의 정도를 잘 조절해가며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맛이 아니라면?

첫 술에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지만, 그 의미까지 헤아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내 입 맛에 맞지 않는다고 뱉어야 할까? 맛없다고 먹지 말아야 할까? 그러나 이 식단이 내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원하지 않아도 먹어야 할 음식이 있고, 먹기 싫어도 살기 위해 먹어야 할 때가 있다. 단순히 '맛'으로만 무언가를 선택하기엔 우리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원하는 맛이 아니지만) 내가 지금 먹은 첫 술이, 나중에 더 큰 에너지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은 기본적으로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다.

그것은 의지와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먹는다'란 표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달라진다.

바보는 미련하게 노력만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마음이나 환경을 바꾼다. 내 첫 술, 내 식단, 내 생각과 의지. 그리고 마음. 무엇을 어떻게 먹고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

그러나, 첫 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시작 중독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어 끝을 이루어내는 그 힌트가 바로 첫 술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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