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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18. 2021

(직장에서) 함부로 하소연하지 말 것

내 고통은 남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You're not trying,
you're whining!


2006년.

나는 입사 3년 차였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직장생활과 학교에선 배우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나는 쪼그라들어 있었다. 대학에서 여러 공모전과 입상을 통해 어디서나 박수를 받던 나였는데, 직장에선 입을 열면 여는 만큼 그 모든 것은 지적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현실을 모르고 철없는 이상을 떠들어대던 한낱 애송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해.

나는 내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듯한 깨달음을 준 영화 한 편을 만났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였다. 그 영화의 대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직장생활의 원동력이 되었다. 뉴욕의 패션 잡지사에서 악명 높은 상사와 일하며 성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패션업계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였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처럼 나는 스스로 그 어떤 의미를 발견해내어 잽싸게 그것을 잡아챘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야."

주인공에게 준 한 선배의 이 말은, 내 귀와 마음에도 그저 꽂혀 버렸다.

상사들이 나에게 지적하는 그 모든 것이, 생각해보니 그들의 일이었다. 순간 그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상사가 되면 그와 같은 일을 할 게 분명하다는 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이후, 나는 상사나 유관부서의 모든 지적을 수용하기로 했고 수용한 피드백을 어떻게 내 성장의 밑거름으로 쓸까를 고민했다. 그러자 마음의 상처는 줄고, 업무 성과는 올라갔다.


사실, 그때는 그 대사 하나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최근 또 하나의 대사가 내 뇌리에 떠올랐다.

십 수년이 지난 후에야 떠오른 그 대사는, 지금 내가 깨달은 바를 표현하기에 딱 맞는 말이다.


"You're not trying, you're whining!"
"너는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징징대는 거야!"


내 고통은 남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철저하게 이기적인 존재다.

저기 멀리 어딘가에서 기아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에 대한 아픔보다, 지금 내 손톱 아래 박힌 자그마한 가시 하나가 내겐 더 큰 고통이다.


직장에서라면 더 그렇다.

직장만큼 이기적인 곳도 없다. 이기적인 개별 존재가 모인 곳이므로 그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불어 회사의 공동의 목표라는 잣대 앞에서 개개인 모두의 고통은 무시된다.


영화 속 주인공이 선배에게 찾아가 힘든 마음을 토로했을 때.

그래서 그 선배의 첫마디는 "그럼 그만둬. 그러면 되잖아"였다. 너 같은 애는 5분 안에 다시 구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주인공이 찾아간 그 선배는 소위 말해 좋은 선배였다. 주인공의 어려움과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그럼에도 그는 차가운 조언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차가움을 격하게 공감한다.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 요즘 슬럼프인가 봐. 일이 도통 손에 잡히지 않아."
"집에 무슨 일이 좀 있어. 힘들다, 정말."
"애인이랑 헤어져서 맘이 너무 아파."
"아, 누구는 회사 때려치우고 사업으로 잘 나간다던데, 나는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나는 그 상사가 너무도 싫어. 같이 일하는데 최악이야. 너무 힘들어."


솔직해져 보자면.

이러한 직장 동료의 말을 들었을 때 진심으로 공감한 적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 고개를 끄덕이고 적절한 반응을 그 앞에서 하겠지만, 밀려오는 업무로 인해 5분 후에 모든 걸 잊었을 것이다. 나에겐 그런 고통이 없다는 걸 다행으로 여기며.


내 고통을 악용하는 사람들


"난 자네를 아직 잘 모르겠어."


직장 상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거나하게 취해서 한 말이므로 그것은 취중진담이었다. 이 말만큼 직장인에게 마음 불편한 현실 대사는 없다. '모르겠다...'란 말은 확신하지 못한다는 말이고, 확신하지 못한다는 건 믿지 못한다는 것이며, 믿지 못한다는 것은 나는 무엇을 해도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깨달음이 덜할 때 나는 분명 이것을 주위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했을 것이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요, 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혹시, 그분이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아세요?"
"그런 말을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나 나는 이제 잘 안다.

이 하소연을 하는 순간, 상사가 나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안 사람들은 주위에 급속히 그 말을 퍼뜨린다는 것. 어차피 그들도 내게 줄 수 있는 확실한 방법 따윈 없다는 것. 내가 알지 못하는, 나를 싫어하는 그 어떤 이는 뒤돌아 웃고 있을 것이란 걸.


하얀 옷에 무언가가 묻었을 때, 그것을 급하게 지우려다 보면 오히려 더 번지는 것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얼룩은 잠시 두었다가 차분히 물에 담가 천천히 해결해야 한다. 더불어, 흠집 없는 물건은 없으며 얼룩 없는 새하얌도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러하지 않기 때문에 직장생활은 힘든 것이다.


나는 당장 변명하거나, 하소연하지 않기로 했다.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상사가 나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부분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변명보다는 그저 내 할 일을 묵묵히 하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어차피, 나에 대한 상대방의 해석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믿고 안 믿고는 상대방의 몫이고, 진심은 통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한다면 나는 상대방의 믿음에 흔들리지 않고 일할 수 있다.


내가 있는 곳은 직장이므로, 그저 내 일을 잘 해내야 하는 게 우선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가 부족해도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직장에서는 하소연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영화 속 선배는 주인공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그만두라는 차가운 말을 했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며 건넨 아주 따뜻한 조언이다.


내 고통은 남에겐 아무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고통을 남들은 (의도했든 아니든) 악용한다.

저 사람 요즘 슬럼프래요.
집에 무슨 일이 있는가 봐요.
애인이랑 헤어져서 힘들대요.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던데요?
그 상사를 무지 싫어하던데요?

도움을 얻고자 했던 말들은 어느새 비수가 되어 돌아올 뿐이다.


하소연은 나 자신에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그 하소연을 내 성장의 에너지로 변환시켜야 한다.


원인은 무엇인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동시에, 상대방의 나에 대한 생각은 절대 변명이나 따짐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얼룩을 빼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듯.

내 일을 묵묵히 잘 해내며 시간의 힘을 믿는 편이 백 번 낫다.


P.S

하소연할 시간이 있다면, 그것 대신 보내는 이메일에 오타는 없는지 한 번 더 점검하는 걸 추천한다.

몸소 깨달은 자의 겉은 차갑고 속은 따뜻한 조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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