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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16. 2021

지진이 나면 꼭 먹어야 하는 멕시코 빵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볼리요를 줘라"

멕시코의 민간요법 (feat. 할머니)


할머니의 힘은 위대하다.

이는 국경을 초월한다. 서양의 할머니는 밥을 먹었다는 손자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간식이니 (수많은 달걀과 베이컨을) 조금만 먹으라 한다. 동양의 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긴 후 그 아이의 before, after 사진을 보면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출처: 유머 게시판


할머니의 위대함은 멕시코도 예외가 아니다.

멕시코엔 할머니로부터 내려오는 생활 처방전이 수두룩하다. 마치, 어느 상처에 된장을 듬뿍 발라 주시는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된장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다. 그러나,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전해 내려온 그 요법은,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전하고 있는 또 다른 사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과학적일는지는 몰라도, 사랑의 크기를 고려하면 그 상처는 이미 나은 거나 다름없다고 보는 게 맞다. 할머니 손은 약손이라며 어루만져 주시는 그 손길에 아팠던 배가 낫는 것처럼.


멕시코에는 통증과 상처를 완화하기 위해 '아르니카(고원 산간지역이나 산림지대에서 자생하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작가 주 -) 연고를 바르거나, 감기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레몬과 마늘을 곁들인 꿀을 활용하는 할머니 처방전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낫게 하려는 그 따뜻한 마음은, 된장이나 아르니카 그 둘을 가리지 않는 듯 보인다.


지진이 나면 먹어야 하는 빵?


부임 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지진을 경험했다. 멕시코 시티는 이미 1985년과 2017년에 큰 지진으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날짜는 9월 19일로 같았다. 내가 경험한 지진은 그 이후 가장 큰 지진이었는데 다행히 큰 피해와 여진은 없었지만, 9월 초라는 날짜를 돌이킬 때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기엔 충분했다. 아마 내년 9월에도 나는 마음을 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진이 나면 사람들은 대개 건물 밖으로 대피한다.

이번 지진에도 사람들은 건물을 빠져나와 거리로 대피했다.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빵을 배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나는 그것이 내 지진의 첫 경험이라 달려오는 차 앞에 얼어붙은 사슴처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흔들리는 집안에서 나는 그저 내 지나온 삶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자, 그건 그렇고.

빵을 배포한다고? 도대체 왜? 너무나 궁금하여 현지 친구에 물었더니,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두려운 사람들에게 가상의 빵을 보냅니다! (출처: www.gastrolabweb.com)


그러니까, 지진과 같은 큰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멕시코 사람들은 빵을 먹는다고 한다. 그것도 'Bolillo(볼리요)'라는 빵을.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이 또한 할머니의 민간요법이라는 설이 제일 유력하다.


그렇다면 왜 Bolillo(볼리요)일까?

볼리요는 멕시코가 스페인에이어 프랑스에 침략을 당했을 때 도입된 빵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이 하얀 빵은 바게트와 꼭 같다. 그래서 여전히 '프랑스 빵'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빵의 가격은 2페소다. 개당 2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국민 음식이다.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는 음식. 우리로 치면 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자산의 크기와 관계없이 하얀 쌀밥 한 숟가락이면 호랑이 기운이 불끈 솟듯이 말이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도 없지 않다.

지진은 공포와 싸우는 자연현상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끼게 되면 위액이 분비된다. 이에 멕시코 사람들은 공포는 위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멕시코 전통 의학 도서관(Library of Traditional Mexican Medicine)에 따르면 볼리요나 차가운 토르티야를 먹으면 위장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안내한다.


사실, 무엇을 먹어도 속을 든든하게 하여 불안을 줄일 수 있지만 언제 어디서나,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볼리요'인 것이다.


"Dale un bolillo para el susto"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볼리요를 줘라"


멕시코에서 이 말이 흔한 이유다.


된장과 볼리요


그러니까, 볼리요는 일종의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사진이 있다. 볼리요로 만든 마스크를 쓴 사람이 어찌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게슴츠레 앞을 바라보고 있다. 지진으로 인해 집 밖으로 뛰쳐나갔으나, 코비드로 인해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웃픈 현실을 반영한 사진이다.

지진으로 나갔다가 코비드로 다시 들어오는 삶엔 볼리요가 필요하다. (출처: www.debate.com.mx)


할머니의 민간요법.

어디에든 바를 수 있고, 어디에서든 속을 채울 수 있고, 어떤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네 된장과 멕시코의 볼리요는 꽤나 닮았다. 아마도 그 사이 교집합에는 '할머니의 사랑'이 있지 않을까.




탄수화물은 사람에게 있어 필수 영양소다.

그런데 탄수화물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몸에만 필수인 게 아니라 마음에도 필수다. 당분과 포만감을 함께 가진 이 음식은 지진을 위로할 만큼 큰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볼리요를 떠올리면 지진이 생각나겠지만, 반대로 힘든 일이 생각나면 또한 볼리요를 떠올릴 것 같다.

손이 닿는 곳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이 없다면, 이곳 멕시코에서는 볼리요를 한 입 가득 넣어보고자 한다.


멕시코 할머니들의 '괜찮아...'라고 말하는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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