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시작하길 바라는 내 마음도 이토록 역동적이다.
글쓰기만큼 정적인 활동이 있을까 싶다.
글쓰기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멀티태스킹을 지양해야 한다. 차분히 앉아 나를 돌아봐야 한다. 생각을 해야 하고, 더 깊은 사색의 통로로 스스로를 인도해야 한다. 몸이 요동하고 생각이 이리저리 날리면 생각과 감정은 휘발된다. 꽉 채워진 물컵처럼 조심히 그 영감과 소재들을 잘 다뤄야 한다.
그러나 나는 때론 그 영감의 물컵을 흔들어 놓는다.
흔들림은 내게 있어 두려움이었지만, 이제는 그 흔들림으로 인해 컵을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넘치면 비로소 그때가 비울 수 있는 기회이고, 무언가에 요동한다면 비로소 그 순간이 불필요한 것들을 떨쳐낼 수 있는 때가 된다. 삶은 그 반복 속에서 진정한 의미가 피어오르는데, 지금껏 나는 흔들리지 않고 곧이곧대로 직진만 하는 삶이 맞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넘치면 큰일이라 허둥지둥 대고, 흔들리면 자책하기에 바빴다.
그러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의 그 마음은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이내 나는 '흔들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흔들림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변해갔고, 이제는 '스스로를 흔들며' 살아가고 있다. '흔들림'은 중심을 잡기 위한 노력이란 걸 나는 글쓰기를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삶은 고단하다.
인정하지 않고, 타인이나 자신을 탓하다 보면 잃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글쓰기는 스스로 인정하게 하고 누군가를 탓하기보단 그 서사와 의미 그리고 맥락을 되짚어 보게 만든다.
흔들림은 역동적이다.
그렇다면, 흔들림을 받아들이게 하고 포용하게 하는 글쓰기는 그 역동성보다 한 수 위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글쓰기 자체는 정적일지 몰라도 그것을 선택한 내 마음은 세상 그 무엇보다 역동적이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글쓰기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며, 갑자기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왔다는 건 내 마음속에서 큰 태풍과 회오리가 있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나는 글쓰기가 너무나도 역동적인 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앉아 글을 쓰는 일은 육체적으로 그리 힘들지 않은 일이지만, 글쓰기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 것이다. 그 쉽지 않은 걸 해내는 에너지는 역동적인 그것과 맞먹거나 그 이상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걸으면서도, 뛰면서도 글을 쓸 수 있다. 머리로 떠올리고 마음으로 곱씹는 그 과정도 글쓰기라는 걸 이제 나는 알기 때문이다. 글쓰기란 게, 그저 책상 앞에 앉아 한숨 푹푹 쉬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게 아니다.
글쓰기는 역동성을 포용한다.
포용된 역동성은 더 깊은 내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깊은 곳에서, 나를 관통한 글은 진실을 듬뿍 담아 표현된다.
이것이 결국 나와 그것을 읽는 사람에겐 그 어떤 영감이 되며, 그 영감은 기어이 실천이 된다.
나는 이 과정이 정말로 그 어느 것보다 역동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오늘 이 글을 읽었다면 스스로를 위한 역동적인 선택을 해보길.
어느 한 분이라도 더 글쓰기를 시작하길 바라는 내 마음도 이토록 역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