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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22. 2021

글쓰기 싫은 날은 글감을 모으는 날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러한 날이 분명 올 것이므로.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보는 우리네 심리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일을 보는 경우 우리는 그것을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게 되고, 그렇다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을 갖게 된다. 앉아서 당장 할 수 있는 건 '생각' 또는 '휴대폰 보기'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보다는 후자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휴대폰을 안 들고 큰 일을 보러 간다면...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 될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는 이미 저만치 멀어졌고, 디지털 시대에 가만히 앉아 있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니 일을 보며 휴대폰을 바라보고, 동시에 뭔가 다른 것을 한다는 안도감이 어우러져 우리는 기어코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향하는 것이다.


이런 습성은 또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무언가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동시에 할 무언가를 떠올린다. 이건 멀티플레이와는 좀 다른 개념이다. 멀티플레이는 동시에 하는 두 가지 일 모두 어떤 목표나 성과를 기대해야 한다면, 앞서 말한 습성은 둘 중 하나는 하지 않는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다. 쉽게 말해, 하나를 포기해도 된다는 말이다.


요즘은 글을 쓰기가 참으로 쉽지 않았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굳고. 그 어떤 생각조차 하기 싫은 나태함과 무기력함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고, 나는 그것에서 헤어 나올 도리가 없었다. 펜을 들 힘도, 자판을 두드릴 의지도 없었다. 만약, 글쓰기를 하기 전이었다면 나는 또 그렇게 주저앉아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를 돌아본 뒤로는.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도 의미를 두려 노력하게 되었다. 


특히나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꾸준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그래서 하루 하나 이상의 글을 써내야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글쓰기 자체를 무섭게 만들었고, 나는 꾸준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전제가 생성되며 오히려 하루 이틀 글쓰기를 미루곤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상. 글쓰기를 못하는 날이나, 글쓰기가 하기 싫은 날조차 글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글쓰기가 잘 안되거나 하기 싫은 날은, 글감을 모은다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어차피 내 경험과 생각, 그것들로 이루어진 삶이 내 소재가 되므로.

무기력한 하루를,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을,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들을. 당장 쓰지 않더라도 마음에 저장해 놓는 것이다. '아, 오늘 나는 이런 마음이구나.', '오늘의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예전 나와는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지금의 나는 왜 이런 걸까.' 등. 마음이 아니라 그것을 쓰고 싶은 글의 '제목'이라도 메모해두면 더 좋다. 그리고 그 제목을 하나하나 쌓아 가다 보면, 글이 마구 쓰고 싶은 날 요긴하게 사용된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써 내려가는 작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무언가를 써내고 있다.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의 차이일 뿐. '역사를 써 내려간다'라는 말은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역사'와 '써 내려간다'는 건 기록하는 것에 전제를 두고 있고, 기록된 것은 타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상대의 기억에 각인된다. 글을 쓰는 날이든, 그렇지 않은 날이든. 결국, 글쓰기와 우리 삶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꼭 노트나 컴퓨터에 글을 남겨야만 글쓰기를 하는 게 아니다.

쓰지 않는 날과 쓰고 싶은 날을 모두 합하여, 우리는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 

쓰기 싫은 날. 무기력하면 무기력한 대로, 두려우면 두려운 대로, 불안하면 불안한대로. 그 기억과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하면 된다.


그것들은 추후, 아주 좋은 내 글의 소재가 될 것이므로.

때론,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러한 날이 분명 올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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