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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13. 2021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그때의 나에겐 잘못이 없다.

잠자려고 누웠다가 이불을 걷어찬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상념들은 왜 잠을 청할 때 몰려오는지 모르겠다. 그 어느 천재 과학자도 만들지 못한 타임머신을 타고 나는 과거로 향한다. 내가 원하지 않은 그 여정에서, 나는 온갖 못나고 추하고 불편한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다. 신기한 건 그 속에 내 멋지고 행복했던 모습은 손에 꼽을만하거나, 아니면 찰나와 같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까 과거로의 여정에서 내가 마주하는 건 대개 어설프고 잘나지 못한 파편들이다. 그 파편들이 내 머리와 가슴에 박혀 오늘의 나를 괴롭히는 것. 대개의 두통과 가슴의 여밈은 그것들로부터다.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고, 잘못된 선택을 했을까.


내 오늘의 모습은 과거 내가 행한 것들의 결과이며, 선택한 것들의 총합이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그토록 스스로를 다그치며 채찍질하던 세월이 내 삶의 9할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나머지 1할이 꽤나 내 마음에 드는 삶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9할의 후회와 1할의 심드렁함으로 채워진 이 마음은 무엇인가.


과거로 돌아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그때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이미 자아가 아닌 타인이다. 타인에게 우리는 감정이입할 수 없다. 공감하는 척은 할 수 있어도 실제로 그 감정에 개입할 순 없는 것이다. 이미 타인이 된 또 다른 나에게 나는 내 것이 아닌 세상의 잣대를 들이댄다. 그때의 내가 그러했던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연이나 사정은 지금의 내 알바가 아니다. 그러니 잘못된 것들만 보이고, 이러했어야 한다거나 그러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다그침만이 가득할 뿐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지난날의 후회가 똘똘 뭉쳐 오늘의 내가 되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 후회로부터 무언가를 분명 배워왔을 것이다. 내가 찾아낸 배움과 깨달음이 부분의 합 이상인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쩌면 '지난날의 나'는 이미 이것을 알고 오늘의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실수와 잘못을 미리 저질러 준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엔 그러한 '과거의 나'를 싫어하고 멀리했는데, 생각해보니 언제나 '과거의 나'는 나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내게 무언가를 귀띔해주려, 오늘의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가슴 깊이 새겨 주려. 지금의 나 또한 과거의 나에게 손을 내밀어 본다. 맞잡은 손은 미래를 향한다.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또 다른 과거의 나가 될 것이므로. 후회를 줄이자는 마음과, 마음껏 후회해보자는 마음이 공존한다.


그때의 나.

지금의 나.

앞으로의 나.


후회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란 의심이나 추궁은 더 이상 중요하지가 않다. 내 모든 생각과 행복은 그 순간의 나에겐 최선이었을 테니. 그 결과가 어찌 되었든, 그것들을 하나하나 받아들여주는 게 진정한 나 자신이란 생각이다. 그 과정에 '자기 화해'가 이루어지며, 마침내 나는 후회를 안 하는 게 아니라 그 후회 속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삶의 정수는 여기에 있다.

실수 안 하고, 잘못하지 않고, 후회를 하지 않는 게 삶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삶의 정수인 것이다.


그때의 나에겐 잘못이 없다.

오늘의 나에게도, 앞날의 나에게도.


그렇게, 그저 나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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