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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03. 2021

라면을 끓이며

삶은 그렇게 반복된다.

외로움이 군대와 같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것은 누구와 함께 있지 않다는 일차원적 외로움과는 무관하다. 또는 누군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유아적 감정도 아니다. 그저 외로운 것이다. 존재가 느끼는 외로움. 존재가 느껴야 하는 고독함.


나는 이제 이 외로움이 싫지 않다.

혈기 왕성할 때의 외로움은 사람을 미치게 하지만 지금의 외로움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든다. 차분한 기분에 젖어들다 보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삶을 돌아보게 된다. 돌아본 내 삶은 그리 좋지도, 그리 나쁘지도 않다. 어쩌면 그 어중간함을 지향하느라 삶은 그렇게 흔들렸나 보다라며 헛웃음을 짓는다.


그러다 마음의 헛헛함은 위장의 허전함으로 찾아온다.

참 재밌다. 결국 사람은 먹고사는 존재이던가. 아무리 슬픈 일을 맞이해도 목구멍으로 무언가를 넘겨야 다음 하루를 맞이할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 어쩌면 그것은 삶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살아갈 거면서.

어차피 살아낼 거면서.


마치 영원히 안 먹을 것처럼, 마치 평생 화장실에 가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고상한 척, 외롭고 괴로운 척 알 수 없는 대상에 온갖 투정을 부린다.


라면 하나를 끓인다.

군대와 같이 찾아온 외로움은 라면의 온전함에 퇴각한다.


온갖 합성 조미료가 가득한 음식이지만, 그 따뜻함과 충만함은 이상하리만큼 몸은 물론 마음까지 돌보는 재주가 있다.

누군가 라면은 몸에 나쁜 것이라 치부한다면, 한 번이라도 라면처럼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본 적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여행의 시작이 여행을 떠올리고 계획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라면을 끓이기로 마음먹고 물을 올리는 그때부터 외로움은 가시기 시작한다. 통통한 면발이 위장을 채워준다면, 따뜻하고 칼칼한 국물은 마음을 채운다.


따뜻해진 몸은 다시 무언가를 할 힘을 낸다.

나는 라면을 먹고 난 후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느낀 충만함과 따뜻함을 남기기 위해.

내가 느낀 소중한 외로움을 기록하기 위해.


아는 맛을 위해 라면을 또 끓이는 것처럼.

삶은 그렇게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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