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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30. 2021

글쓰기, 불편한 무의식을 이끌어내는 불쾌한 과정

불쾌한 과정을 즐기는 유쾌함

글쓰기는 즐겁지 않다


고백하건대 글쓰기는 그리 즐겁지 않은 행위이다.

한 공간에 가만히 앉아, 마음과 머리 그리고 몸을 동시에 써야 하는 이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먼저 활동을 최소화해야 한다.

지루하다는 생각이 곧 올라온다. 사람은 가만있으면 움직이고 싶고, 또 움직이면 쉬고 싶어 하는 간사한 존재다. 그러니 글을 쓰자고 마음먹으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 그 순간은 곧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 순간을 회피하고 싶어 글쓰기 자체를 시작하지 못한 적도 많다. 이 자리에 앉으면 써지지 않는 글로 고통받으며, 스스로가 친 격벽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운명에 처할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글을 쓰고자 앉는 날이 있다.

그렇다면 다음은 마음과 머리의 차례다. 글쓰기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글쓰기에 대한 큰 착각은 많이 알고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그러니까 머리로 써 내려가야 한다는 편견인데 꿋꿋하게 앉아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면 잘 알 것이다. 머리로는 해야 함을 알지만, 결국 기꺼이 어려운 시간을 선택하여 글을 쓰는 건 훅하고 올라온 알 수 없는 감정에 의한 것이란 걸 말이다.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런데, 우리네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걸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장 쪽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머리에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로 작동하는 가슴의 쿵쾅거림과 쓰림은 뇌로부터 온 신경전달 물질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기쁨과 고통의 실체를 느끼는 건 가슴 쪽이니 나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선명한 구분보다는 그저 우리네 마음은 가슴과 머리 둘 다에 있다고 결론짓는다.


또한, 뇌에 있는 해마와 편도체는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데 기억과 감정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할 때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고, 반대로 무언가를 느낄 때 어떤 장면이 기억나는 것은 해마와 편도체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주된 소재와 주제는 바로 이 '마음'이다.

기억과 감정. 그 둘이 얽히고설켜 결국 글쓰기의 공간에 우리를 욱여넣는 것이다.


쓰지 않으면 못 배길 마음의 힘은 이내 몸을 지배한다.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을 견디게 하고, 목과 손목이 아플지언정 장시간의 공을 들여 내 마음 하나하나를 기록해 나아간다.


불편한 무의식을 이끌어 내는 불쾌한 과정


그러는 사이, 나는 불편하고도 불쾌한 감정과 조우한다.

지난날의 소재들은 기쁜 것보단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사람은 나에게 왜 그랬을까. 그때 내가 그러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삶은 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등. 이불킥을 해도 모자란 수많은 에피소드들과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이 범벅되어 나를 엄습한다.


무의식은 불편하다.

불편하기에 저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것을 마주해야 글을 써낼 수 있다. 의식의 표면에 있는 것으론 글을 써 나아갈 수 없다. 쓴다고 한들, 그것은 껍데기를 핥는 수준밖에 안된다. 글쓰기의 사실상 본연의 본질과 목적은 진정한 '나'를 조우하는 것이다. '진정한 나'는 저 깊은, 나 조차도 모르는 수면 아래에 있다.


그러니 그 과정은 꽤 불쾌하다.

숨기고 싶었던, 피하고 싶었던,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내 과거와 원형을 마주 봐야 하고 내가 행했던 모든 실수와 아픔들을 끄집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멋지고 예쁜 모습만을 SNS에 올린다.

글쓰기는 그와 반대다. 절망을 쓸 줄 알아야 진정한 글이 나온다. 그 '진정한 글'은 누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른 누구를 신경 쓰지 않으며 써 내려가는 글에는 그래서 힘이 있다. 다른 이에 대한 배려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에 더 집중하라는 뜻이다. 나는 매일을 그러하려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불쾌한 과정을 즐기는 유쾌함


글쓰기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불편한 무의식을 이끌어내는 그 불쾌한 과정은 결국 나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유쾌함을 안겨 준다. 그 불쾌한 유쾌함이 없으면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를 정도다.


평온함은 흔들림에서 오고, 빛은 어두울 때 더 밝아 보인다는 삶의 역설을 돌이켜보면, 불편하고 불쾌한 과정은 결국 유쾌함으로 이어진다는 걸 깨닫게 된다.


피하고 싶고, 숨겨 두고 싶었던 나를 찾아 악수하는 자기 화해의 과정은 결국 오늘의 나를 더 강건하게 한다.

스스로를 마주하지 못하면 내가 사는 이유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삶의 목적이 좀 더 명확해지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욕구를 채워 가는 과정을 오롯이 즐긴다면, 모든 불쾌함은 유쾌함으로 바꿀 수 있다. 물론, 유쾌함은 지속되지 않는다. 그 찰나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또 다른 불편하고 불쾌한 상황들을 마주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좀 더 성숙해지는 것이다.


그 성숙의 과정은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포함하며, 그 순간순간의 의미와 깨달음을 얻는 유쾌한 과정은 결국 글쓰기를 통해 가능하다.


오늘도 불편하고 불쾌한 그 과정을 기꺼이 선택하고 즐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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