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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04. 2021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한 해를 돌아보며 하게 되는 다짐

제법 계절의 변화가 느껴진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살다가 계절의 변화로 시간을 자각한다. 우리나라만큼 계절의 변화를 대서특필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큰 태풍이나 폭풍이 몰아치지 않아도, 내일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고 하면 온 나라가 들썩인다. 영하로 내려가는 일은 매년 있는 일인데도, 사람들과의 거리 인터뷰와 패딩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기사는 여러 곳에 도배된다.

어쩌면 뉴스가 바쁜 우리의 모습에 경종을 울리는 방증이 아닐까 한다. 계절이 바뀌었으니 잠시 쉼표를 찍고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이다. 이런 뉴스가 대서특필 된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바쁘게 뛰어가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알싸하고 낯선 공기 내음은 가을을 예고하고, 짧아진 가을 뒤에 겨울이 올 거란 건 누구나 예측한다.

겨울이 온다는 이야기는 또한 올 한 해가 저물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사람들의 마음은 분주해진다. 연초 세웠던 계획과 그 결과를 반추한다. 그 간극이 크기 때문에 우리네 마음은 분주해지는 것이다. 하지 못한 것, 지키지 못한 것과 다짐했으나 실천하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마음만 분주해질 뿐, 불편한 마음을 그대로 안고 또 오늘을 사느라 그저 바쁠 뿐이다.


지난 몇 년간은 내게 쉽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좋지 않은 그 어떤 삶의 이론을 들이대도 다 들어맞는 그런 나날들. 그런데 좋지 않았던 그 시간을 한데 모아 뭉쳐 놓으니 나에겐 큰 깨달음이 되었다. 삶은 이유 없이 나를 가만 괴롭히는 게 아니다. 내게 부족하거나, 내가 가고 있는 길 외에 다른 걸 보라는 신호를 자꾸만 보낸다. 내가 그 방향으로 가지 않을 때, 삶은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여러 빌런을 내게 보내 인생의 경로를 바꾸게 한다. 그것을 모르는 나는 힘겹게 삶과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긴 시간을 함축해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바로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것이다.

그러하지 못했기에, 나는 힘들었고 삶은 혹독했다. 한 해를 시작하며 다짐한 많은 것들이 있고, 이루어내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하지만 나는 이것 하나만 잘 챙기면 올 한 해는 정말 보람찰 것이라 확신한다. 이 깨달음이 지난날의 아픔을 의미 있게 만들고, 다가올 시간들을 가슴 벅차게 해 줄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면서 두려움의 대상이다.

기분 좋을 때 떠올리는 바다는 경치 좋은 풍경이지만, 풍랑을 만들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바다는 무섭다.


그럼에도 가장 먼저 내게 떠오르는 바다의 속성은 바로 '포용'이다.

나는 포용하지 못했다. 그러니 갈등이 많았고, 그 갈등은 여러 상황과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바다로 모이는 이유는 내 모든 걸 받아줄 거란 기대 때문이다. 거대한 바다 앞에 서서 마음속에 있는 소리를 끄집어내면 그것만큼 시원하고 강렬한 게 없다. 그러나, 나는 포용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이 내게 오길 바랐다. 주변을 살피지 못한 내 착각과 광기는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한 것이다.


다음으로 닮고 싶은 바다의 속성은 바로 '거대하지만 표면적인 분노'다.

바다는 시시때때로 분노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노하면 그 노여움은 무섭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다. 흥미로운 점은, 바다의 분노는 '표면적'이란 것이다. 비바람이 불어 바다가 요동하면 거대한 파도와 혼란을 만들어 내지만, 심해는 온전하다.

화를 내기는 하지만 그 중심은 고요한 것이다. 쉽게 화를 내지 않지만, 화를 내면 무섭고. 노여움에 휩싸이기는 하지만 그 중심은 잔잔한 존재. 이것은 거대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내 마음은 밴댕이 소갈머리와 같아서 바다는커녕, 비 오는 날 어느 길거리의 작은 웅덩이만도 못했다는 걸 반성한다.


마지막으로, 바다의 '겸손함'이다.

바다의 위력 앞에 그것은 절대적으로 보이지만,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하나의 웅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중력에 묶여 있어 자유롭지도 않다. 밀물과 썰물은 달과의 관계에서 오는 타의적 움직임이고, 표면에서 일어나는 파도의 높이도 날씨에 좌우된다. 거대하지만 겸손한 그 존재를 나는 진심으로 닮고 싶다. 같은 웅덩이라도 그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웅덩이가 겸손함을 가지려면, 더 커져야 한다.


'포용'은 내 마음의 크기를 크게 하고, '거대하지만 표면적인 분노'는 나를 지키며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내 삶의 속성이 되면 나는 마침내 경거망동하지 않을 수 있는 '겸손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계절의 변화는 매섭다.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즉, 그것은 시간의 흐름이고 우리는 시간의 흐름 위에 놀아나고 있다.


이왕 놀아나고 있는 거라면 나는 내 중심을 잡아가며 흔들리고 싶다.

맹목적인 흔들림은 삶을 요동하게 하지만, 중심을 잡아가며 흔들리면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는 중심을 잡아가며 흔들리기에 우주적으로는 웅덩이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에게 있어선 거대한 존재가 된다.

나를 붙잡고 옭아매는 것들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나를 견고하게 해주는 중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삶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나는 어느 정도 중심을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 없이 살던, 이유를 모르고 흔들리던 나를 깨우친 건 그러니까 다름 아닌 바다다.


굳이 그것을 보려 서쪽, 동쪽 그리고 남쪽으로 내달리지 않아도, 내 마음을 넓혀 그것을 머금을 수 있다면 어디에든 바다가 있는 것이다.


바다를 품어,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그게 올 한 해를 정리하는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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