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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23. 2021

오늘은 내 인생 중 가장 늙은 날

나는 이렇게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어제의 내가 잠이 들어 눈을 뜨고는 오늘의 나가 되었다.

잠은 우리 삶을 리셋해주는 고마운 개념이다. 단 몇 시간이라도 눈을 감고 꿈속을 헤매다 현실로 돌아오면 몸과 마음은 자의든 타의든 다른 날을 맞이 하게 된다.


'오늘은 남은 내 인생의 첫날이다',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란 말이 있다.

오늘 내가 맞이한, 그러니까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난 '다른 날'은 그렇게 해석된다. 뭔가 새로이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바람이 녹아든 문장들이다. '다른 날'은 이처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위 두 문장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반복되는 일상들을 새롭게 조명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불끈했던 마음이 이내 식어 버리고 만다.

'다른 날'은 무슨. 어제와 똑같은 날이지 뭐. 어제와 같이 실수하고, 어제와 같이 초라하고. 어제와 같이 앞날을 모르겠는 우주의 먼지와도 같은 나를 다시금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열정은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 준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 날개를 달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날개가 꺾였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일종의 과장법일 뿐이지, 우리는 날개가 있던 적도 없고 등 죽지에 날개가 돋아날 일도 없다. 열정의 뜨거움은 현실이라는 상온을 만나 급격하게 식어버린다.


또 하나.

오늘이 남은 인생의 첫날이고,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란 말을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을 믿었다가 놓친 것들이 많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 생각과 행동이 글러먹어서다. 사람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 또는 무엇인가가 내 것이라 생각할 때 교만해진다. 예를 들어, 오히려 시간이 촉박하고 빡빡할 때 글을 더 많이 써낸다.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는 휴일이나 연휴엔 글 하나 제대로 써내지 못한다. 빈둥대거나, 영상을 보거나. 침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시간이 많다고 생각해서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은 '교만'과 관계가 깊다. 그러니까, 오늘이 남은 인생의 첫날이고, 가장 젊은 날이라고 생각하면 '다행'이라는 '교만'이 찾아오고, 나는 일을 또 하루 미루고 만다. 마음만 충만할 뿐, 그 어느 것도 행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사실, 오늘은 내 인생 중 가장 늙은 날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교만'이 시간을 흘러가게 놔둔다면, '아쉬움'은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는다. 젊음이 교만이라면, 늙음은 아쉬움이다. 나는 이제 교만보다 아쉬움을 택하기로 했다.


다시 말하면,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날이고 또 가장 성숙한 날이기도 하다.

물론, 나이를 많이 먹는다고 해서,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론 과거가 더 성숙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과거를 모으고 모아서 머금은 존재가 바로 오늘의 나다. 지난날의 성공과 실패를 포용하여 깨달음과 의미를 찾아낸다면 나는 더 성숙해질 수 있다.


오늘은 내 가장 젊은 날이라고 치기 어린 도전을 하기보단, 어제의 나를 돌아보고 더 늙기 전에 나를 좀 더 바로 잡고 싶다는 생각이다.

젊음을 갈구하는 마음은 이미 스스로가 젊지 않다는 걸 방증한다. '젊음'이라는 단어 하나에 설렐 시간과 여유가 나는 없다. 오늘도 하루하루, 시간 시간, 분과 초를 앞다투어 나는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른이 되고 철이 들까라는 생각은 이제 접기로 한다.

부족하고 못나도. 어제의 나를 품어 오늘의 나는 좀 더 성숙한 존재라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이런 생각을 하니, 어쩐지 조금은 더 어른이 된 것 같다.

뜨겁지 않아도 뭔가가 마음속에서 꿈틀 대는 이 느낌이 낯설지만 영 싫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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