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Dec 11. 2021

안 흔들리려 발버둥 쳤던 나를 반성하며

사람에겐 위태위태한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

불안과 두려움은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은 것에서 온다. 안정적이지 않은 것들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흔들림은 위태위태함이며, 그 위태위태함은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한다.


그래서다.

우리는 흔들림을 용인하지 않는다. 마치, 흔들리면 무언가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안 흔들리는 존재를 나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내가 움직여 흔들리든, 환경이 변하여 흔들리든. 해 아래 고정된 것은 없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고정된 건 아니다. 두 다리를 땅에 붙이고 잠시라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항변해봤자, 지구는 공전과 자전을 하고 있으므로 그 말엔 설득력이 없다.


성경 시편,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란 말이 있다.

바람에 나는 겨는 세상 풍파에 따라 이리저리를 나돈다. 그것은 흔들림과는 거리가 있다. 흔들림은 '중심'을 잡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러니까 악인과의 구분은 중심을 잡으려 하느냐와 중심 없이 이리저리를 흩날리느냐로 할 수 있다. 흔들린다고 하여 악인이 된다거나,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흔들리는 나 자신'을 죄악시 해왔다.

마치, 못나서 흔들린 것처럼. 내가 잘못하여 요동한 것처럼. 그러나 지난날의 내 흔들림을 모으고 모아 종합해보니, 그것은 똑바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어떤 때 그것은 발악이기도 했다. 그런 나를 벌레 보듯 바라봤던 나를 이제 반성하기로 했다. 그 흔들림으로 인해 오늘의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책임져야 한다.

과거의 나는 오늘의 나를 위해 흔들리고 발악했음이 틀림없으니까.


과거의 나에게 나는 만족했던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최소한. 과거의 나를 인정해주고, 보듬어 줘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과거라는 단어에 따라오는 연관어는 '후회'이며, 그러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결국 느끼게 되는 것은 '아쉬움'이지만. 그 판단은 오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보며 하는 것이므로, 과거의 내 입장에서 그것은 합리적이지 않을뿐더러 일부러 '후회'와 '아쉬움'을 전가하려 했던 적은 없기 때문이다.


요는.

안 흔들리는 게 아니라, 잘 흔들려야 한다는 게 내 결론이다.


흔들리지 않으면 중심을 잡을 수 없고, 흔들리지 않으면 부러지기 십상이다.

더불어, 흔들림은 살아가는 데 있어 요상한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외줄 타기를 위태롭게 하는 사람을 보며 우리는 불안함과 위태위태함 속에서 희열과 짜릿함을 느끼지 않는가. 안정적이지 않은 것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은 그렇게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 하나.

흔들림은 불필요한 것들을 털어내 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의도치 않은 괴로움으로 삶이 힘들 때. 내가 많이 흔들릴 때. 주위를 보면 알 것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옥석이 가려진다. 흔들릴 땐 몰랐는데, 흔들리고 나니 떨어져 나간 것들에 대한 통쾌함을 느낀다.


그렇게, 중심을 잡기 위해 그리고 불필요한 것들을 떨쳐내기 위해.

흔들림은 내 삶에 있어 어쩌면 축복과도 같은 시간이자 과정일 것이다.


안 흔들리려 발버둥 쳤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그 발버둥의 에너지를 좀 더 잘 흔들리는데 써야지...라는 다짐이 마음 어느 한구석을 흔들어 놓는다.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더 이상, 행복이라는 기분에 좌우되고 싶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