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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09. 2021

더 이상, 행복이라는 기분에 좌우되고 싶지 않다.

삶의 목적은 그다음에 찾아봐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삶의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냥, 행복하게 사는 거죠 뭐."


이 대답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행복'이란 말은 참 쉽다. 대답하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복잡 미묘한 인생의 해프닝과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굳이 골라내지 않아도 되는 대답. 모든 것을 퉁쳐 말할 수 있는 편리하고도 범용적인 답이다. 그것은 마치 백화점에 진열된 기성복과 같고, 어느 문제집의 맨 뒤에 있는 해답지의 정답과도 같다.


그러나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때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향수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행복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그것을 다시 한번 더 경험하고 재현하려 발버둥 친다. 특히나 오늘 하루가 힘들었다면, 오늘 하루가 고되고 슬펐다면. 더더욱 행복에 집착하게 된다.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느낀다는 것은 감정이다. 그 감정의 발단은 기분이다. 통상 기분이 좋으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세로토닌이 분비되며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감정'이나 '기분'은 그야말로 찰나다. 호르몬 작용은 오래가지 않아 다른 호르몬으로 바뀌고, 기분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어지럽게 흔들린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오늘 행복하기를 선택했다'라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아니면 착각이거나. 우리는 행복을 선택할 수 없다. 오히려 선택당한다고 보는 게 맞다. 더더군다나, 우리는 행복만을 선택해선 안된다. 어릴 적부터 귀에 박히게 들었던 골고루 먹으라는, 골라먹지 말라는 가르침은 이것에도 해당된다.


행복만을 추구하면 할수록, 나는 더 불행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행복하지 않은 마음이 들면, 그것을 선택하지 못했다며 나 자신을 자책했다. 이 얼마나 코미디와 같은 일인지를 모르겠다.


그것이 거듭되니 마침내 깨닫게 된 것이다.

내 불행의 근원은 행복해지려는 나의 강박이었다는 것을.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내 삶의 목적과 이유가 무엇일까.


이제는 '행복'이라 말하지 않는다.

고작 내 삶의 목적이 '기분'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에 내 삶을 맡겼다간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삶엔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내포되어 있다.

균형과 불균형,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상반되는 것들이 역설을 만들어 내고, 우리는 울면서도 웃을 수 있고 웃으면서도 울 수 있는 존재다. 삶의 다양한 현상과 요소들 중, 행복만을 골라먹으려 한다면 우리는 놓치는 것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그래서 삶 또한. 골고루, 골라 먹지 말고. 꼭꼭 그 의미를 되새기며 내 것으로 만들기로 한다.


그것들을 잘 받아들이고, 삼키고 소화시키면.

어느새 그것들은 내 몸의 영양소가 되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테니까.


더 이상.

행복이라는 기분에 좌우되지 않기로 한다.


그저 삶을 꼭꼭 씹어 달든 쓰든.

골고루 잘 먹어야지.


삶의 목적은 그다음에 찾아봐도 늦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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