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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14. 2021

내 모든 게 짐처럼 느껴질 때

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으로 그 보따리를 채울 수 있는지.

어디서 생긴 말인지.

어디서 생긴 개념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삶'이 힘들 때 '무게'와 연관 짓는 습성이 있다. '삶의 무게', '짓눌린 어깨', '무거운 마음' 등. 팍팍한 삶을 표현할 땐 여지없이 이러한 표현을 떠올린다.


그래서일까.

'무게'란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의 짐을 짊어지고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아니, 분명 그렇다. 절대 벗으려 해도 벗어지지 않는 무거운 무언가. 때론 찌뿌둥한 몸도, 개운하지 않은 마음도 모두 짐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그뿐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갈등을 겪는 사람이. 모든 인간관계가 버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지난날의 나는 뭔지 모를 내 짐들을 내팽개치려 발버둥치곤 했다.

왜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는 짐. 무엇이 들어 있어 이렇게 무거운 건지 원망을 불러일으키는 짐. 내 것이 아님에도 지어야 하는 억울함의 짐. 남들은 내 것보다 가벼운 짐을 지고 가는 것 같다는 비교의 짐. 모든 삶의 번뇌와 괴로움 그리고 허무함은 내가 지고 있는 짐에서 온 것들이란 생각이었다.


오지에 사는 원주민들은 강을 건널 때 무거운 돌덩이를 일부러 진다고 한다.

배는 바다에 머물기 위해 무거운 닻을 항상 지니고 다닌다. 외줄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선 무거운 평형 막대기를 들고 가야 한다.


'짐'을 미화하려는 게 아니다.

삶의 무게와 버거움은 미화될 수 없다. 왜 태어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주지 않은 절대자의 횡포를 고려할 때 우리네가 짊어지는 짐과 무게는 절대 미화되어선 안된다.


다만, 이왕 이렇게 되었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의미를 헤아리는 것이다.

떠내려 가지 않기 위해,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수 있게. 그리고 중심을 잡을 수 있게. 의미를 헤아리면, 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무게'를 역이용하거나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짐을 부정하기보단 그 안을 들여다보려 한다. 

어차피 짐은 벗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짐이 무겁다고만 불평했지, 그 안을 들여다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것들을 다 풀어보진 못했지만, 다만 풀어본 몇 개에서 나는 '의미'와 '깨달음'을 찾아낼 수 있었다. 더불어, 이 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이것을 지게 되었는지도 어렴풋이라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지어야 할 짐이라면 그 안에 무엇을 넣을 수 있을까.

이것 또한 또 하나의 깨달음이다. 의미 있는 무게라면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 언젠가 짐을 풀어, 그 안의 것들을 활용하거나 요긴하게 써먹을 날이 올 테니 말이다.


삶의 무게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나에게 짊어진 짐은 벗어던질 수 없다.


그렇다면 그 무게를 내 삶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내가 지고 있는 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동시에 나는 무엇으로 그 보따리를 채울 수 있는지.


내 모든 게 짐처럼 느껴질 때, 내 온 체중을 실어 묵직하게 생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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