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Dec 02. 2021

삶이 리셋되는 기분

삶의 무엇인가가 내 생각의 통을 엎지른 게 아닌가 싶다.

현대인은 'ctrl+z'에 중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언가를 돌이키고 싶을 때, 컴퓨터 자판의 그 두 키를 떠올린다. 되돌려 놓고 싶다는 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바람이자 후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참으로 쉽게 되돌리기를 구사하려 한다.

디지털의 세계에선 그것이 가능하다. 디지털이 만연하다 보니 때론 실제 삶에서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란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삶은 냉철할 정도로 아날로그다. 연신 그 두 키를 눌러도 삶은 되돌려지지 않는다. 그것을 떠올리거나, 슬며시 눌러보는 건 바꾸지 못하는 삶에 대한 미련이다.


그럼에도 삶이 리셋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건 자판을 두드려서 얻어낸 결과가 아니다. 단축키를 통한 실행이 아니다. 기분은 디지털이 아니다. 철저하게 아날로그이니 구체적으로 설명할 도리는 없다. 그럼에도 설명을 하자면, 리셋되는 그 순간 육체는 그대로인데 영혼이 바뀌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내 '원형'은 그대로다. 그러니 내가 뭔가 변화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내가 느낀 걸 글로 표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그러해야 한다고 어느 인생의 지점에서 결심했더랬다. 항상 확실한 것만 글로 써야 한다면, 글쓰기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왜 인지 이유를 모르는 것에 대해 달려들 때. 글쓰기는 멈추지 아니하고 이어진다. 명확한 것만을 쓰려한다면 그것은 묘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대로인데,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통째로 바뀌는 듯한 그 느낌을 나는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할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로 적는 것은, 그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이것이 형이상학적인 것인지, 형이하학적인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내 마음과 영혼이 지금의 이 느낌과 생각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을 발동시켰고 나는 그저 두 손을 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때론, 누군가 내 영혼과 생각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네 육체는 유한하며 보잘것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 갇힌 생각과 영혼은 더 보잘것없는 것이다. 그러나 손에 쥐어지지 않는 걸 우리는 좀 더 승격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과 영혼은 어디에라도 갈 수 있다는 착각이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것들은 육체에 욱여넣어져 사소한 지배를 받는다.


육체가 문드러진 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자유를 찾을 것인지, 아니면 소멸할 것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다만, 그것들에 대한 낭설이 있을 뿐이며 실제로 경험해보지 아니하고는 그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사적인 경험의 영역에 그것은 아직도 머무르고 있다.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써 내려가고 있는 지금의 이 글은 지금 내 의식의 흐름을 닮았다.

물을 엎질렀을 때, 그 물이 흘러가는 곳은 자연의 물리적 이치에 따른다. 그렇다면 내 의식의 흐름 또한 그 어떤 법칙과 이치에 따를 것이니 그것을 그대로 이어가 본다.


아마도 삶의 무엇인가가 내 생각의 통을 엎지른 게 아닌가 싶다.

고로, 삶이 리셋되는 기분이다.


이 기분과 느낌을 놓치지 않으려 나는 지금 이 글을 쓴다.

그것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두고 보자. 중력을 따라 아래로 향할지, 그것을 거슬러 우주로 향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내일 아침 눈떠보면 알 것이다.


삶이 리셋되는 이 기분이 나에게 무엇을 예고하고 있는지를.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쓰라는 거짓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