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작가'라고 불릴 수만 있다면 내가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주고서라도 그 타이틀을 얻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생각한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책을 내는 것이었다. 문제는 가장 빠른 방법은 언제나 가장 어려운 방법임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주제에 책이라니.
책은 내 버킷리스트엔 존재하지도 않던, 넘보지 못할 무엇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작가'라 칭하면 그렇게 되는 시대다. SNS엔 책 한 권 내지 않았지만 원하는 것을 표현하며 스스로를 작가라 부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이 무슨 작가냐라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훌륭한 작가가 맞다고 그 반문에 나는 대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작가(作家)'란 말은 '지을 작'자와 '집 가'자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만의 집을 짓는 사람. 그러니까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표현하고, 스스로의 세계관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말 그대로 '작가'인 것이다. 꺼내어 놓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표현하지도 않으면서 네가 무슨 작가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 뜻을 다시 한번 더 상기시켜 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든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다'라는 말을 항상 외친다.)
요는, 시대가 변하여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란 것이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이 없던, 평범한 직장인인 나 또한 이 시대의 혜택을 봤다고 인정한다. 글쓰기를 배워본 적도 없고, 꾸준하지도 않던 내가. '작가'란 타이틀이 내 삶에 들어올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던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쓰고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다는 것은 내 노력 일부가 지금의 이 시대와 공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삶은 끝이라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고 나면 공허함을 가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책을 내면 세상 전부를 가질 수 있을 거란 오만은 금세 착각이라는 깨달음으로 귀결되었다. 책 한 권 낸다고 인생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내면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바뀔 줄 알았다. 이것 또한 큰 착각이었다.
일생일대의 꿈인 책 한 권을 내고 스러지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날의 그러했던 나도 떠오른다. 책을 내고 나니, 오히려 더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가야 할 다음의 길은 어디일까를 고민했다. 무언가를 이루었는데, 오히려 길을 잃은 느낌. '끝'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무엇이다. 결국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었고 '무겁게 주어진 과제'의 다른 말이었다.
결국 내가 결심한 길은, 그저 쓰는 것이었다.
다음 책을 위해서, 돈을 위해서,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내 안에 갇혀 있는 생각과 느낌들을 놓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은 그리 자유롭지 못하니, 내 안에 있는 것들만이라도 자유롭게 해야겠다는 본능적 이끌림이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또 하나.
글을 쓰면서 결심한 건 '생산자의 삶'을 살자는 것이었다. 소비적으로 살던 때의 공허함을 다시금 재현하고 싶지 않았다. '글'은 나의 생산물이므로, 글쓰기가 이어지지 않을 땐 '글을 쓰자'가 아니라 '뭐 하나라도 생산하자'란 마음으로 모니터 앞에 앉았다. 그러면 어떻게라도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 좋은 시대다.
주지 않으면 만들면 되는 시대다. 글쓰기를 할 수 있는 플랫폼도 많고, 출판 방법도 여러 가지다.
그러나, '작가'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건 참으로 쉽지 않다.
계속해서 내 무언가를 꺼내어 집을 짓듯 지어 나가야 한다. 꾸준한 글쓰기. 멈추지 않는 생산. 나를 관통하여 내어 놓아야 하는 글이,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작가를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