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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18. 2021

장르에 맞춰 쓰지 않기

나만의 장르를 만들어 가기

우리가 흔히 아는 '장르'는 불어다.

이 단어의 어원은 '기원', 또는 '종(種)'이라는 뜻의 라틴어 게누스(genus)에서 유래되었다. 문학의 종류를 구분하는 우리에게 친숙한 개념으로 쓰인 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였다. 그는 작가의 도덕적 우열, 모방의 형식 그리고 재료 등에 따라 작품을 분류하였다. 그 당시의 장르는 크게 '서사시', '비극' 그리고 '단시'였다.


오늘의 우리 또한 쉽게 장르를 구분한다.

문학, 소설, 시, 에세이, 자기 계발 등. 전문적인 위계의 구분을 하지 않더라도 개념적으로 알고 있는 장르는 우리에게 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을 사거나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그 장르를 먼저 떠올린다. 자기 계발서란 장르를 떠올리면 내게 필요한 무언가를 더 용이하게 찾아볼 수 있다. 또는 내가 알고 싶은 내용을 먼저 떠올리고, 그것이 담긴 장르를 찾는 것도 우리에겐 보편화되어있다.


그러나 글을 쓸 땐 그 보편적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내 글은, 나를 관통하여 무엇이든 쏟아내야 한다. 처음부터 장르를 정하고 글을 써나간다는 건,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특정 운동 종목 하나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것과 같다. 운동을 위해선 기초 체력을 먼저 길러야 한다. 탄탄한 기초 체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운동 종목을 경험하며 자신에 맞는 분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지만, 글쓰기를 시작할 때 우리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절차를 떠올리지 못한다.

그것은 글쓰기의 막막함과 연관이 되어 있다. 아무것도 모르니, 뭐라도 확실한 것을 붙들려고 하는 본능이다. 장르만큼 확실한 게 있을까. 장르를 정하여 글을 쓰면 무언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말 그대로 착각이다.


'장르'는 '카테고리'라는 개념과도 상통한다.

'카테고리' 또한 종류와 범주의 개념으로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의 '집합체'다. '집합체'는 '개별의 합'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선 '개별'을 만들어내야 한다. '개별'은 내 글 하나하나다. 하나하나의 글이 쌓이고 쌓이면 그제야 우리는 분류를 할 수 있고, 분류를 하면 범주를 만들어 내어 마침내 장르를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글쓰기 실력이 올라왔고 써 놓은 글이 많다면 장르를 정하여 쓸 수도 있다.

문제는 개별의 글이 없는데 장르부터 정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 글쓰기의 시작에서 무언가를 정하고 쓰려는 시도보다는 내 안의 것들을 마구 꺼내어 놓는 게 더 우선이다.

장르를 정하고 쓰면 오히려 글은 더 안 써진다. 장르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과, 써 놓은 글이 장르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글쓰기를 멈추게 하는 전형적인 자기 검열관의 속성이다.


글을 써보자.

글을 모아보자.

그리고 그것을 분류해보자.


그렇다면 보일 것이다.

나만의 장르가. 나만의 스타일이. 그것이 대중에게 바로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니라면 그것을 초석으로 하여 다듬어 나가면 된다. 이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길을 가면 된다. 어느 길도 가보지 않고 단 하나의 정답 길로 가려는 욕심은 글쓰기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나만의 장르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내 글 하나하나가 모여 그것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으로.


그러다 보면 세상에 없는 장르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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