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시민참여 정부 조직인 'CCSPJP(공공안전, 형사정의를 위한 시민 위원회)'는 최근 세계 주요 도시 살인율 순위를 정리하여 연례 보고했다.
보고서에 가장 많은 도시 이름을 올린 국가는 다름 아닌 자국, 멕시코. 멕시코가 세계 1위로 치안이 불안한 국가에 꼽힌 것이다. 바로 전년도까지 발생한 살인사건 통계를 근거로 작성한 보고서에는 살인율 1~10위에 오른 10개 도시 중 멕시코 도시는 무려 7개였다. 그중에서도 1~6위가 내리 멕시코 도시였다.
멕시코 과나후아토 주(州)의 셀라야는 인구 10만 명당 109.38명 꼴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1,000명 중 1명이다. 압도적 1위다. 2위는 티후아나, 3위는 후아레스 시티, 4위는 오브레곤 시티, 5위는 이라푸아토, 6위는 엔세나다였다. 이어 8위 또한 멕시코의 우루아판이었다. 사이사이에 있는 도시의 나라들은 미국, 브라질과 남아공이었다.
멕시코 국민들도 이러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멕시코 치아파 주(州) 판텔로 마을의 주민들은 최근 SNS에 주민 안전을 위한 방어군을 결성했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성명문을 읽는 사람 양 옆으로 총기를 든 시민들의 모습이 결연하다. 성명문에서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를 보며 슬퍼한 우리가 직접 청부살인업자들과 마약업자들을 몰아내겠다"라고 외쳤다. 납치와 살인, 마약 장사 등 각종 범죄를 일삼고 있는 범죄 카르텔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이러한 불안은 정부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다.
범죄 카르텔과 결탁한 정치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각종 범죄 신고까지 무력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멕시코는 이제 마약 국가로 전락해 공권력에 희망을 걸 수 없다는 푸념이 늘어나고 있다.
멕시코 시티의 삶은?
갑작스러운 멕시코 발령.
부임 전 나에겐 여러 가지 두려움이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중남미라는 지역. 코로나 확진자 수가 우리나라의 몇 배를 웃돈다는 통계. 그리고 위에서 살펴본 치안문제까지. 가야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걱정이 앞섰다. 6개월가량을 먼저 부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혼자서라도 먼저 살아보고, 가족들의 이동을 결정하자는 생각이었다.
부임 후 얼마간은 사무실과 집만을 오갔다.
혹여라도 코로나에 걸릴까, 혹여라도 총기강도나 납치에 연루되진 않을까.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한 겨울에도 한낮기온이 20도를 웃도는, 햇살 가득한 멕시코 거리를 오가며 그들의 삶과 표현을 만끽한다. 천사 탑이 있는 멕시코 중심 도로는 수많은 문화 행사로 인해 전면 통제되는 일이 많고, 그 통제된 거리를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하며 행진한다. 때로는 자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민주 광장으로도 쓰이며, 소소하게 아이스크림을 들고 천사 탑 주변에 앉아 그저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도시 곳곳은 유럽의 낭만이 생각날 정도로 노천카페가 즐비하며, 왁자지껄 떠들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가족과 연인의 모습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무엇이었다.
무엇이 진실일까?
내게 멕시코는 영화 '시카리오'에 나온 무섭고도 두려운 마약 카르텔이 득세하는 나라였다. 부임 후 집 앞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던 그 불안함을 나는 선명히 기억한다.
그러나 미디어에 나오는 멕시코와, 내가 살고 있는 멕시코는 정말 다르다.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가?
결국 전 세계 어디나, 극도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건 바로 '경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최근 기준의 세계 빈부격차 순위 중 멕시코는 54위(순위가 높을수록 빈부격차가 큼)에 랭크되었다. 생각보다 그 차이가 심한 것 같지 않단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최근 빈부격차가 커졌다는 걸 피부로 느끼는 우리나라가 147위인 점을 볼 때 멕시코 빈부격차의 크기는 상당하다.
멕시코는 소득계층 상위 20%가 전체 가계소득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역 간 빈부격차도 심하다.
예를 들어 멕시코시티가 100의 소득을 기준으로 한다면 오하사카 지역의 소득 수준은 48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 거론된 치안이 불안한 도시들은 그보다 더 낮은 소득 수준일 것이다.
도시 빈부 격차는 여러 척도로 측정될 수 있다.
의료, 대중교통, 초등부터 고등교육, 음식과 레크리에이션 문화까지. 멕시코 시티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 중 한 곳에 사는 사람은 가장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보다 식료품점 접근성이 1.4배 높다. 대중교통 용이성은 21배,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22배, 직업 접근성은 28배, 공공기관 접근성은 35배, 대학 접근성은 54배 그리고 침상이 있는 병원에 대한 접근성은 무려 113배나 높다.
차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안타깝지만 범죄율은 높아진다. 앞서 이야기한 범죄율 상위 도시들은 대부분 아래 지도의 붉은 지역 또는 그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멕시코의 도시별 직업 접근성 차이를 보여주는 이미지 (출처: thecityfix.com)
어서 와, 방탄(차)는 처음이지?
차 문을 여닫는데 버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겁다.
SUV 트렁크는 위로 올리면 대개 고정이 되는데, 붙잡고 있지 않으면 알아서 (무게로 인해) 닫히다 보니 잘못하다간 머리를 다칠 수 있을 정도다. 액셀을 밟는 것과 차가 나가는 건 별개다. 엔진 소리는 벌써 차체를 저 앞으로 가져다 놔야 하지만, 나를 태운 물체는 굼뜨기만 하다.
멕시코 시티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현지 동료들이나, 한국 근무자들 또한 크고 작은 사건/ 사고의 경험이 있다.
소매치기부터 총기 강도까지. 일전엔 차량으로 다가와 총을 내밀어 강도를 당한 임원분이 계셨기에 그 이후부터 주재원들의 차는 방탄차로 지급이 되고 있다. 차는 잘 나가진 않지만, 방탄차 안에 있으면 왠지 모를 심리적 안전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누군가 총구를 들이밀어도, '이거 방탄차야!'라고 외치며 도망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치안이 어떤지 검색을 하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들이 있다.
"밤늦게 다니지 말고, 가지 말란 곳 가지 않으면 생각보다 괜찮아요."
사실, 사건 사고는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멕시코이건, 한국이건. 그저 그러한 일을 맞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혹시라도 그러한 일이 생기게 된다면 안전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뿐.
나는 내가 일하는 곳의 나라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래야 일을 하는 보람이 더 생기고, 성과도 잘 나며 지역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멕시코의 빈부격차를 내가 해소해줄 순 없지만, 멕시코에 대한 오해의 격차는 (글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조차, 멕시코에 대한 이미지는 영화 시카리오에 대한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께, 멕시코는 자유롭고 열정적이고 아름다우며 (밤늦게 돌아다니지 않고 가지 말란 곳만 가지 않으면) 생각보다 치안이 불안하지 않은 나라라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