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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5. 2021

자괴감이 들 때, 나는 나를 다시 세운다.

결국, 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건 무너진 폐허 속에서다.

자괴감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이다.

글쎄, 사람은 참 이상한 존재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도 그렇지만, 부끄러움은 타자와 관련된 상대적 또는 피목격에 의한 감정인데.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게 도통 이해가 잘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자괴감은 내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나'와, 그것을 지켜보는 '나'가 어떤 연유에서 어떤 논리로 그 역할을 나눴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부끄러운 마음은 평온한 마음을 파괴하고 요동하게 만들며 모든 것을 무너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괴감이 생기면 마음의 시너지가 발동한다.

시너지는 좋은 뜻에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다. 자괴감이 들 때를 생각해보면, 나는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까지 모두 끄집어내어 지금의 내 못난 모습과 연루시킨다. 무의식 저 깊은 곳에 묻혀있던 흑역사를 기어이 불러오고, 이 못난 모습으로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란 자책은 분명 자괴감이 불러 모은 감정의 시너지다. 


자괴감이 들면, 그렇게 젠가 게임의 탑이 무너지는 것처럼.

내 모든 것들이 무너진다. 그래도 잘했다고 믿어왔던 것들과 스스로 만족했던 모든 일들이 부질없게 된다. 어둡고 습한 생각과 마음이 엄습한 곳에 봄은 없다. 차가워진 마음을 가진 영혼은 오들오들 떨 수밖에 없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무형의 존재는 한 없이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러니, 그것을 담고 있는 물리적 육체는 고단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기분을 떨쳐버리려 이리저리 발버둥 쳐보지만, 그것을 떨쳐내기란 불가능하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는 자와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 그 둘을 내가 다 가지고 있으니 그 누구 하나를 버릴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결국, 내가 해야 하는 건 그것 안에서 의미를 찾는 일이다. 어쩌면 의미는 합리화와도 닮아있다. 합리화하지 않으면, 자괴감의 그 순간을 버텨낼 도리가 없다. 의미 찾기와 합리화는 이처럼, 자괴감에 있어 명약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의 치료제가 될 순 있다.


내가 찾은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자괴감이 왔을 때, 나는 나를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것. 모든 것이 폐허가 된 그곳에 나만의 도시를 다시 세운다는 이미지가 불현듯 머리에 차오른다. 새로운 도시는, 폐허가 된 곳에 세워질 수 있다.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이라고 쉽게 표현해도 좋겠다. 어차피 내가 쌓아 올린 것들과, 이미 만들어 놓은 나만의 제국은 무너지고 폐허가 되기를 반복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삶은, 언제나 그렇듯 무언가 결실을 맺을만하면 다시금 그 모든 것들을 폐허로 만들어 밑바닥부터 시작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시시포스의 저주는 비단 신화 속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이 진실을 아는 사람이 신화를 빗대어 세상에 그것을 (신 몰래) 설파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어찌 되었건, 자괴감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고 결국 이 느낌이 들면 마음은 무겁더라도 나를 하나하나 다시금 쌓아 올려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건 무너진 폐허 속에서다.

빠르게 초고층으로 나 자신을 세울 욕심은 버린 지 오래다. 이제는 속도와 높이보다, 무엇에 더 신경 써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자괴감이 온 이유. 지켜보는 나와, 부끄러움을 느끼는 나의 관계. 그 둘이 또 다른 나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들.


자괴감 하나만을 들여다봐도, 그 안엔 참으로 여럿인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나 하나만을 고집하기보단, 또 다른 나에게 다가가며 나는 조금은 더 성숙해지고 단단해짐을 느낀다.


하나가 아닌 여럿이 세워가는 무언가를, 나는 격하게 응원하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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