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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7. 2021

연말과 김치찌개

누군가 지금 내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대학시절, 내 집은 어느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언덕은 대개 여유롭지 않은 자들의 보금자리다. 어딘가로의 근접성은 돈으로 환산되므로, 여유롭지 않은 자들의 보금자리가 언덕에 위치하는 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공부와 학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그 언덕을 오르던 기억은 내게 있어 매우 생생하다.

저녁 7시나 8시. 추운 겨울날 입김과 함께 나는 그 언덕을 올랐다.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 주택 작은 창문 사이로 노오란 백열등 불빛이 새어 나오곤 했다. 새어 나온 건 비단 불빛만이 아니었다.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무슨 요리를 먹는지 알 정도의 음식 냄새.


그중, 가장 코에 맴돌던 냄새는 바로 김치찌개였다.

아마도 돼지고기가 들어갔을 찌개의 냄새는 그토록 담백했다. 하얀 쌀밥 한 술 떠, 김치와 고기를 담은 찌개 국물과 함께 라면,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여유롭지 않다는 현실과 가난이라는 멍울을 잠시 저 밖으로 밀쳐 낼 수 있었다.


겨울의 입김이 나오면 그래서 나는 그 장면들이 떠오른다.


가난한 골목에서 피어오르던, 가난하지 않은 풍경.

모든 걱정을 날리고도 남을 음식 냄새와 달그락거리는 왁자지껄함.


이번 연말 메뉴는 그래서 집에서 먹는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다.

식탁에 둘러앉아 사랑하는 아내, 아이들과 함께 먹는 김치찌개는 내게 있어 행복이자 감동이다. 밖에서 묻혀 가져온 사회에서 맞이한 서러움은 겨울철 입김처럼 금세 사라진다.


꿈꾸던 풍경이 막상 눈앞에 펼쳐지면, 그것이 내가 꾸었던 꿈인 줄을 금세 잊는다.

나는 이러한 내 어리석음에 몇 번이고 속아왔다. 그러하기에 이제는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을 행복으로 간주해야 하는지를 잘 안다.


창문 밖으로 새어 나오던 그 행복한 소리와 담백한 냄새.

누군가 지금 내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가족과 함께 먹는 김치찌개'라고 그저 간단하게 말할 것이다.


밥 한 술 크게 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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