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는 히브리어로 '내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라'라는 말이다.
그 뜻 때문에 마법사들의 주문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영화 해피포터에서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마법사들도 (이) '말'의 힘을 알고 있는 것이다.
말은 파동과 파장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이것들이 사람과 우주를 움직인다는 이론까지 있다. 뇌과학자나 심리학자들 또한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연구나 논문을 무수히 내어 놓고 있다. 종교 또한 '기도'라는 행위로 겉과 속으로 하는 '말'의 힘을 믿고 따른다.
굳이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 각 개개인은 잘 알고 있다.
말하는 방법이나 표현을 바꿔보면 뭔가 삶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때로, 무심코 뱉은 말을 주워 담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면 정말로 말한 것을 이루어내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말하는 것이나 다짐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기록하는 행동들에는 분명 힘이 있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엔 순서가 있을까?
'생각', '말', '행동'엔 순서가 있을까?
사실,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 보통은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수순으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 없이 말을 던질 때도 있고, 어떤 일을 저지르고 나서야 생각하며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생각', '말', '행동'이라는 그 세 가지 요소에 침잠하다 보니 우리는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감정'이다.
'감정'으로 인해 이 세 가지 순서는 언제나 뒤죽박죽 될 수 있다. 생각이나 말 그리고 행동 중에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그 순서를 정하는 건 바로 '감정'이다.
생각하고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는 그 당연한(?) 수순을 밟지 못했을 때 스스로의 감정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질문을 달리 해, 그 세 가지의 난도를 가늠해본다면 어떨까?
가장 쉬운 것부터 나열해보자면 그 순서는 생각 - 말 - 행동이 될 것이다. 앞서 말한 '수순'과 다르지 않다. 아니, 이 난도가 곧 그 수순인 것이다. 생각하고 떠올리는 것은 참 쉽다. 때론, 자동적으로 어떠한 생각이 떠오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휘발성이 강하다. 갑자기 떠올랐다가 공중에 산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붙잡기 위해선 그것을 표현해야 한다.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말'이다. '나는 오늘부터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하루 1시간 책을 읽겠다'라고 겉으로든 속으로든 말을 한다. 좀 더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이것을 기록하기도 할 것이다. 기록은 결국 내 생각과 말을 박제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다. 생각하고, 말하고 그것들을 기록하는 건 우리가 언제나 해 온 행위다. 그러나 이 중, 몇 개가 현실로 이루어지는지는 바로 '행동'에 달려 있다. 우리가 말하는 '실천'이다. 대부분 여기에서 무너진다. 생각하고 말하고 기록했는데, 그 어떤 행동이나 실천이 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생각', '말', '행동'을 조율하는 감정의 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다짐을 하면, 그것을 꼭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면 이루어지지 않는 게 훨씬 더 많다. 물론, 그 이유 중 몇 가지는 외생 변수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생각하고 말한 것을 지키지 않는 내생변수의 영향이 훨씬 더 크다.
그 '내생변수'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감정'이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나를 모르는 이유는 바로 이 '감정' 때문이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란 표현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감정 앞에 무기력한 우리를 잘 말해준다. 행동이나 실천이 발현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생각하고 말할 때의 감정과, 그것을 막상 행하려고 할 때의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5분만 더 있다가 뭘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말'해도, 5분 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우리는 몇 분 뒤 우리의 감정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행동한 대로 말하는 연습
이러한 요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어제와 같이 오늘을 살면서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삶의 맥락을 바꿔보기 위해 우리는 그 인과관계를 뒤집어 보거나, 아니면 순서를 통째로 바꿔보는 무식한(?) 시도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지 못해 온 나를 평생 다그치며 살아왔다.
생각하고 말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수순을 고집하다 보니 발생한 일이었다. 그 가운데에 '감정'이라는 변수가 있었음을 깨달은 건 바로 '글쓰기'를 하고 난 뒤다. '글쓰기'는 '생각', '말', '행동'을 총합하는 과정이자 행위다. 그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성립될 수 없는 게 바로 글쓰기다.
(생각) 좋은 영감이 떠오른다.
(말) 오늘은 글 한 편을 꼭 써내야지.
(행동)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발행하기.
그러나, 이 과정에 어김없이 감정이 개입한다.
'오늘은 피곤한데 그냥 잘까?'
'이상하게 글이 안 써지네. 덮고 내일?'
'내가 바라는 글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시도한 새로운 방법은 바로 '그저 쓰자'였다.
너무나 당연하고 단순한 방법이라는 걸 알지만. 그 효과는 이제껏 내가 경험한 것 중 가장 컸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퇴근한 후 나는 옷을 갈아입지 않고 바로 글을 쓴다. 직장에서의 텐션(?)을 그대로 활용한다고 해도 좋고, 생각하고 말로 다짐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일단 책상에 앉아 쓰고자 했던 주제와 소재를 골라 글을 써내려 간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나는 오늘 내가 글 한편 썼다고 말한다.
글은 기록이므로, 기록은 이미 완료되었다. 증거가 되는 것이다. 또한 글을 쓰는 과정과 퇴고의 과정에서 나는 무수한 생각을 한다. (말 그대로) 행동한 후 말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연습을 한 것이다.
생각하고 말하는 순간, 우리 감정은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른다.
행동을 먼저 해보는 것이 때론 꼭 필요하다. '수순'이라는 덫에 걸려 원하지 않는 모습을 반복할 때, 우리는 이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순서를 바꿔봐야 한다. 해오던 그것을 그대로 해선 안된다.
글쓰기로 이것을 예로 들었지만, 운동이나 공부 등 많은 곳에 그 방법은 적용될 수 있다.
요는,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또는 그 '감정'이 변화될 틈을 주지 않거나.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행동한 대로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둘 중, 어느 것에 더 신뢰가 갈까?
나는 매일 빠짐없이 글을 쓰겠다고 말하며 한 두 번 빼먹는 것보단, 매일 빠짐없이 글쓰기를 실천하며 나는 꾸준히 글을 쓰겠다고 말하는 게 더 믿음직스럽다.
당연한 말로 느껴질 것이다.
삶은 원래 당연한 것을 실천할 때 가장 큰 성과와 선물을 가져다준다.
더불어,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의 '나'라는 '자아'와 함께, 그것에 대해 논의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 감정이 개입하거나 너무도 쉽사리 그것이 변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