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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27. 2022

길이 있는 곳에 뜻이 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은 '에고 버스'라는 것이 더 확실해지는 찰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란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부턴가 이 말에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뜻'을 그리 크게 가져본 적도 없거니와, 그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내게 길이 열린 적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원하지 않는 길로 떠밀려 살아온 세월이 더 많고. 그 안에서 꾸역꾸역 어떤 뜻을 발견한 적이 더 허다하다.


<직장 내공>에서 나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삶은 결국 '해야 하는 것'을 하며 더 많이 배우게 되고, 그것을 통해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 둘을 이분법적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하고 싶은 일' 안에도 '해야 하는 일'이 넘쳐난다.. 그래서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도, '이게 내 길이 아닌가?'란 의구심을 갖게 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하고 싶은 일'과 상통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게 된다라는 말이다.


'해야 하는 일'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길이 있는 곳에 뜻이 있다'란 말로 귀결된다.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은 아니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니까.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없던 제품과 새로운 생태계를 만든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의 뜻을 헤아리려 하지만, 그라고 모든 길을 개척하고 만들어 왔던 건 아니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던 건 그의 뜻이 아니었다. 그가 원한 길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에 의해 주어진 길을 그는 묵묵히 걸었고, 픽사를 인수해 10여 년 만에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 드디어 수익을 냈다. '토이 스토리'라는 명작을 만든 건 그러니까 그의 뜻이 아니었다. 뜻으로 길을 만든 게 아니라, 주어진 길을 가다 뜻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룬 것이다.


더불어, 픽사에서 그가 얻은 건 바로 '듣는 법'이었다.

까다롭고 극단적이고 독불장군인 그를 변화시킨 건 픽사에서의 경험이었고(그 성격을 완전히는 바꾸지 못했더라도...), 이 변화가 결국 추후 애플에서의 성공을 만들어 낸 리더십이 된 것이다. 

그의 유명한 마케팅 방식인 스토리 텔링 또한 픽사에서 배운 역량이다. 사람들을 사로잡는 그의 프레젠테이션엔 그것들이 녹아져 있다. 정교하고 치밀한 그의 발표 무대는 한 편의 드라마틱한 영화와도 같다. 스티브 잡스는 다음 생애엔 픽사 감독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까지 말했을 정도다.


이렇게만 보더라도, '뜻'과 '길'의 인과 관계는 다른 관점으로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길'과 '뜻'의 상관관계


오랜 직장생활은 내 '뜻'이 아니었다.

그 누구의 어렸을 적 꿈이 '월급쟁이'였겠나. 모두가 마음속엔 하고 싶은 일과 세상을 바꾸고,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버는 그 어느 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꿈'이 '뜻'이라고 보면, 각자의 '뜻'을 이루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


대부분의 삶은 '길'에서 '뜻'을 찾아간다.

뜻을 세우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갈 거란 착각은 잠시 접어 두어야 한다. 물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나의 착각일 수 있다. 누군가 이룬 업적을 보고 우리는 쉽게 속단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한 번 떠올려 보자. 아마도 콘텐츠 크리에이터나 연예인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여러 광고를 찍었다더라, 한 달에 얼마를 번다더라. 그것에 가려진 그들의 해야 하는 일과 어려움 등은 간과되기 일쑤다. 뜻을 가지고 도전했으나, 그들 또한 마음대로 길이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닥치는 일과 주어진 기회에, 그러니까 부여된 길목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뜻을 찾게 되었고 성공을 했다고 생각을 해보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게 된다.


경기 무형 문화재 30호 북 메우기 악기장인 임선동 장인의 이야기는 우리 마음을 울린다.

그는 선천성 소아마비를 안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대북, 청와대 춘추관 북, 통일전망대 북 등 나라의 중요한 북 제작에 모두 참여한 최고의 인물이 되었다. 


그에겐 어떤 뜻이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길을 만들어 뜻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가 북을 만들게 된 사연은 이렇다.

소아마비 어린아이가 길을 잃고 헤맬 때. 한 중년 신사는 그 아이에게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으니 그 어느 곳으로 가자 했다. 북을 만드는 곳이었다. 스승은 그에게 말했다. "너는 다리가 이러니까, 이걸 안 배우면 천상 너는 업신여김 당하고 살기 힘들다. 그러니까 무조건 배워라." 임선빈 장인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를 악 물고 계속 반복하고 버틴 이유이자 원동력이었다. 


그러니까, 임선빈 장인도 처음엔 그저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불편한 다리를 가진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 또한 뜻을 만들어 길을 개척한 게 아니라, 길에서 뜻을 하나하나 찾아 나간 것이다.


오랜 직장 생활.

내가 바란 길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내 뜻이 아니라는 생각을 접고 길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자 마음 가짐을 달리하고 나니 사방에 줍줍 할 것들이 넘쳐났다.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활발히 하고 있는 이 즈음에서 돌아보건대, 이 모든 역량과 기술들은 결국 본업인 직장생활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도 나에겐, 남은 직장 생활이 있고 그 안에 주워 들 의미와 배움들에 나는 이미 마음이 설렌다.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거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자책할 시간이 없다.

지금 내게 주어진 길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 하나하나 줍다 보면, 어느새 나는 뜻을 세우고 이룰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물은 길을 묵묵히 흘러 나간다.

정해진 수로를 따라 말없이, 불평 없이 흐른다. 흐르는 것엔 치유 능력이 있고, 또 다른 에너지를 생산해 낼 힘이 있다. 그러나 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것이 범람하면 길은 아무 소용이 없다. 길을 잡아먹는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낸다. 정해진 길을 가다가도, 뜻이 세워지면 물은 강력하게 돌변한다.


뜻을 스스로 꼭 세워야 할 필요는 없다.

뜻은 발견해도 된다. 길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만들지 않아도 된다. 다른 이가 만든 길을 가도 된다. 그러나 내가 주워 들어야 하는 의미와 뜻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가꾸고 키워 나가면 된다. 뜻이 세워졌다면, 보다 큰 뜻을 위해 범람해도 좋다.


우리는 늘 드라마틱한 삶을 탐한다.

무언가 한 방에, 무언가 한 번에. 무언가 쉽고 간결하게. 무언가 곧고 완벽하게 그러나 세상에 그러한 내 길은 없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에 대항할 수 있는 건, 그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들에 저항하기보단 물과 같이 모든 것을 담아내고 정화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가 아니라, '길이 있는 곳에 듯이 있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그러함으로, 우리는 더 많은 뜻을 이뤄낼 수 있다.


결국, 그 뜻을 발견하고 키워내는 것은 '나'이므로 나와의 대화는 필수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은 '에고 버스'라는 것이 더 확실해지는 찰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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