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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28. 2022

쓸데없는 시간이 나를 만든다

시간의 쓸모가 아니라, 나의 쓸모를 고민해야겠다.

무척이나 소비적으로 산다는 죄책감이 들 때가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 무거운 마음은 지금도 안고 있다. 이것은 과거형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아우른다. 사람은 무슨 대단한 원죄를 지었길래, 한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지를 모르겠다. 저마다 편안한 마음과 힐링을 추구하는 걸 보면, 그 이면엔 내내 마음이 분주한 환자라는 자아가 있을 뿐이다.


무언가를 그저 흘려보내고 있다는 무거운 마음은 어디서 왜 오는 걸까.

또다시 그 이면을 보면, 그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엿보인다. 삶은 이렇게 역설의 역설이다. 잘하려다 더 힘들어지고, 지치고 힘들어 마음을 내려놓으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 평온함도 잠시.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며 몸과 마음은 불편해진다.


누가 이토록 삶을 어렵게 설계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쓸데없이 보낸 시간들을 하나 둘 모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면, 나는 어쩌면 내가 원하는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있지 않을까.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후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자아를 고민하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오늘의 나에게까지 그 무거운 마음은 평생을 쫓아오고 있다.


그러다 문득, 쓸데없는 시간인 과연 무엇일까란 의문이 들었다.

언제가 의미 있는 시간이고, 또 언제가 의미 없는 시간일까. 질문을 던지고 나니 내가 기억을 하지 않는 시간들이 떠올랐다. 예를 들면 화장실이나, 어딘가로 이동할 때의 그 시간들. 내 기억은 본론만 기억하려 한다. '본론'은 무언가를 해내는 시간이나, 생산하는 시점을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쓸데없는 시간이라 여겼던 시간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또다시 그 복잡한 역설을 떠올려보면, 쓸데없다고 여긴 시간들 덕분에 쓸데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생산적이고 고상한 일을 할 수만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소비해야 생산해낼 수 있고 화장실에서 몸속에 있는 것들을 비워야 고상한 일을 할 수 있다. 허송세월이라고 생각했던 그 안엔 내 쉼이 있었고, 사색과 경험이 있는 것이다.


호르몬과 아드레날린을 따라 천방지축으로 좌충우돌하던 그때의 기억과 경험이, 오늘의 내가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과연 '쓸데없는 시간'이란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시간을 '쓸 데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무모한 것 아닐까. 시간의 속성은 그저 흘러간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그것을 나누고 쪼개는 건 하찮은 존재의 오만이자 스스로를 좁은 격자에 가둬 두는 것이란 생각이다.


결국, 쓸데없는 시간이 나를 만든다고 보는 게 맞다.

쓸데없는 시간 안에 쓸데 있는 시간이 있고, 그 둘은 반복되고 뒤엉키면서 흘러간다. 흘러가는 그 안에 우리가 있을 뿐, 시간을 나누고 평가하는 건 우리 몫이 아닌 것이다.


문득,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단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쓸데없는 시간이라 생각했던 그 순간의 것들을 끄집어내어 글을 쓰고 있다.


시간의 쓸모가 아니라, 나의 쓸모를 고민해야겠다.


'쓸데없는 시간'이란 건 없다.

다만, '쓸데없는 시간'이란 (쓸데없는) 관념만이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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