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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02. 2022

썩은 동아줄인지 아닌지 누가 아는가

삶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라는 회의가 들 때가 있다.

남과 비교할 때, 나보다 몇 발자국 더 앞서 나간 사람들을 볼 때 더 그러하다.


그래서 뭐라도 해보려 발버둥 친다.

그러나, 이게 맞는 것인지 저게 맞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헷갈림의 극치는 언제 이 순간이다. 명백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고군분투해왔는가. 시험 답안지엔 객관식이든 주관식이든, 딱 들어맞는 정답만 써넣으면 우리는 안도할 수 있었다. 설령, 그것을 모르더라도 어찌 되었건 그곳에 무언가를 써 놓지 못하는 게 삶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그러나 학교를 벗어난 삶은 녹록지가 않다.

답이 없기 때문이다. 답이 없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답을 찾지 못한다는 것과 답이 없다는 것엔 엄연히 큰 차이가 있다. 답을 찾지 못한다는 건 문제를 다시 읽거나 내가 노력하여 그 답을 알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답이 없다는 것은 아무리 찾고 노력해도 그것을 알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는 답이 없는 것을 추구하며 고군분투한다.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모르지만. 꾸역꾸역 어딘가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절박함에 이런저런 동아줄을 잡는다. 답이 없으니 그것은 대부분 썩은 동아줄일 가능성이 높다. 썩은 동아줄은 노력은 했으나 이뤄지지 않는 성과를 의미한다.


기어이 잡은 게 썩은 동아줄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좌절한다.

그러나 더 무서운 건. 내가 붙들고 있는 게 썩은 것인지 아닌 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끊길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그 찰나에 끊길 수도 있다.


삶이 쉽지 않은 이유다.

답이 없다고 말하는 근거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답이 없는 것이라면, 내가 답을 만들어가는 것. 정답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해답을 찾아서 말이다. 또는, 문제를 다시 한번 더 제대로 읽어 보는 것이다. 답을 모르면 질문을 바꾸어 보든가. 글을 쓰는 이유다. 글을 쓰며 나는 질문을 바꾸어도 보고, 내 나름대로의 답안지를 작성하기도 한다.


동아줄은 꼭 필요할까?

동아줄을 잡아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것이 중요하다는 명제를 떠올려본다면.

굳이 동아줄에 목을 메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썩은 동아줄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려 하기보단.

내가 꼬은 새끼줄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보자고 다짐한다. 세상의 정답이 동아줄이라고 외친다면, 나는 그것을 잡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썩었든 썩지 않았든. 그것에 담긴 나름의 의미를 찾아내 보고자 한다.


삶엔 정답이 없고, 나만의 정답을 만들어 가자는 그 마음은 오만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말했다. 썩은 동아줄도 잡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온전한 동아줄만 잡으려는 마음을 버린다면, 나는 그것이 오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썩은 동아줄인지 아닌지 누가 아는가.

더불어, 내겐 썩은 동아줄이 잘못된 길로 향하던 나를 다른 길로 안내해준 것일 수도 있지 않는가.


삶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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