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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07. 2022

주말에 자가용으로 대형 마트를 간다는 것의 의미

겸손함과 감사함. 그것들이 많아지는 요즘.

어느 주말.

가족들과 차에 올라 대형 마트로 향했다. 잠시 뒤면, 우리는 커다란 봉투 여러 개를 들고 차 트렁크에 그것을 쌓아 을 것이다. 대형 냉장고에 그것들을 하나 둘 넣고는, 당분간은 먹을 걱정 없다며 정서적 포만감에 배를 어루만지면서.


가족들과 마트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이 모습은 나에게 있어 무슨 의미일까?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이 모습이, 혹시 당연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내 어렸을 때 모습과 비교해보면, 분명 이것은 생경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다. 자가용도 없었고, 대형마트도 없었고. 무엇보다 주말에 가족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내 기억 속엔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시대의 차이기도 했고, 내 개인적인 역사의 다름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당연한 것을 돌이켜 보니 이것은 당연하지가 않은 것이었다. 왜 그런 게 있지 않은가. 어렸을 때 당연하고 평범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른이 되면서 그것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기를 깨닫게 되는 순간. 어른이 되면 당연히 취업을 하고, 돈을 벌고, 가족을 이룰 것이라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니 그것들은 그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주말에 자가용으로 대형 마트를 간다라...

우선 가족이 있으려면 나는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을 하려면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야 한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려면 연애를 통해 사랑을 확인해야 하고, 연애를 하려면 만남을 이루어야 한다.

자가용이 있으려면, 마트에 가 무언가를 살 수 있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나는 돈을 벌어야 하며, 돈을 벌기 위해서 나는 무언가를 생산해 내야 한다. 생산은 '귀속 생산'과 '자발 생산'으로 나뉠 수 있을 텐데, 나는 직장인이니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귀속 생산자'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취업을 해야 하고, 면접을 봐야 하며, 그 이전엔 입사 기준에 맞는 요건을 갖추기 위해 공부를 했어야 할 것이다. 공부를 하려면 학교에 가야 하고, 학교에 가려면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가정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허겁지겁 스스로 대답을 하다 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서 그러하지 않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시, 이것들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는 그저 감사해하기로 한다. 지금까지는 무언가를 쟁취하려, 가지려, 손에 넣으려 아등바등해왔는데. 지금에 드는 생각은 더 큰 욕심을 가지기보단 있는 것들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제는 '간절한 바람'보다는 '그저 감사해하는 것'에 좀 더 마음이 쏠린다.


우리나라는 중산층을 기준으로 위아래의 등급을 나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처럼 대놓고 등급을 나누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사실 이미 그 분명한 경계를 느끼고 있다. '수저론'도 이것을 대변한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는 거부하기로 한다.


다만, 내 나이 중년을 떠올리기로 한다.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은 나이. 그래서 애매하고, 서러운 나이. 그러나 젊음의 요동은 덜하고, 아직은 노년에 대한 불안함이 그리 크지만은 않은 때. 나는 잠시 안도한다. 중간에 걸친 자의 위치는,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처지라는 걸 깨닫는다.


아이들에게, 주말에 자가용을 끌고 대형마트를 가기 위해선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는 걸 설명한다면.

아마도 나는 커피 농도 짙은 라떼가 될 것이다. 그러나,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언젠간 이것을 알아서 깨닫길 바란다. 그것은 삶을 어렵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쉽지 않게 바라보는 지혜라는 걸 알려 주고 싶다. 굳이 어렵게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쉽게 바라보는 자세는 좋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겸손함과 감사함.

그것들이 많아지는 요즘.


는 정녕 중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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