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어느 한 편에 있는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 놓고 '갬성'을 읊는듯한 책들을 보며, '이런 것도 책으로 나오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인스타그램에 있는 그와 같은 글을 볼 때도 그렇다.
오글 거리는 글이 한가득인 계정들이 있다. 차마 내 손으로는 쓰지 못할 글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갬성' 가득한 그 글들을 가벼이 여기는 내 모습 속에서.
나는 내 오만함을 발견했다. 앞서 '고백'이라는 말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러한 글들을 바라보는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자면.
어느 서점 한 편에 있는 '갬성' 가득한 그 책들. 어찌 되었건 책이 되어 나왔다는 것은 누군가가 누군가의 가치를 알아봐 준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팔리고 말고를 떠나, 수요는 있다는 것이고 나는 단지 그 책의 수요자와 독자가 아닐 뿐. 그 책을 선택하는 사람은 분명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인스타그램의 글 또한 그 '갬성'이 누군가의 '감성'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그것을 누군가는 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 영향력과 어루만짐.
그것들은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며, 또 누군가는 그것들로부터 큰 위로를 얻는다는 것이다.
'갬성'을 얕보지 않기로 했다.
다만, 나의 오만을 얕보기로 한다.
세상엔 나 아닌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포용하지 못할 때 나는 후퇴함을 뼈저리게 느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