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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12. 2022

글 하나는 초라하지만, 쌓이면 특별해지는 마법

글쓰기는 글을 재단하지 않는다.

글쓰기를 시작하자고 다짐했을 때의 초라함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시작은 해야겠고, 써 본 적은 없고. 처음 써 내려간 글의 비루함은 내게 있어 충격이었다. 아, 내가 이리도 글을 못 쓰는구나. 아니, 그보다 더. 나를 위해 글을 써 본 적이 없구나. 내 마음을 표현하는데 나는 이렇게나 서툴구나.


글쓰기 강의를 할 때, 나는 수강생분들에게 내 첫 글들을 공개한다.

스스로 흑역사라고 말하며. 그러나 재밌는 건, 흑역사지만 부끄럽지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랑스럽다. 그것은 글쓰기의 시작이었고, 그것은 내 고백의 시작이었으니까. 수강생분들도 내 첫 글을 모자라게 보는 게 아니라, 지금 나를 있게 해 준 초석이라고 받아들인다. 아무렴. 시작은 언제나 서툴고 초라한 것이니까.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던 내가 정말 생뚱맞게 글을 떠올렸다.

사람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반면,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라는 양가감정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 내가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나, 한 두 번 해봤을 때 흥미가 느껴져야 가능한 감정이다. 대부분은 내가 그것을 잘할 수 없다는 두려움으로 귀결되고 시작은 그곳에서 멈추게 된다.


잘 쓰지도 못하고, 내어 놓은 첫 글이 초라한데.

그렇다면 나는 왜 글을 계속해서 써 내려갔고 지금도 써내고 있는가. 그것은 '나'에 대한 미련이었다. 글을 잘 써서 책을 낸다던가, 어느 대회에 나가 등단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나'를 발견하고, '나'를 알아갈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 글쓰기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첫 글이 초라해도 계속해서 쓸 수 있었던 이유. 괜한 목표를 세우고 좌절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궁금할 때 그저 하나 둘 써 내려간 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글이 하나 둘 모이니 재밌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글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것이 모이니 신기하게도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첫 성과는 '책'이 된 것이다. 투고를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전문가의 눈에 내 쌓인 글은, 조금만 엮으면 하나의 책이 된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책을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닌데도, 글이 모이니 자연스레 힘을 발휘해 스스로 책이 된 것이다.


더불어, 하나 둘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글을 쌓아 가니, 글쓰기에 진심인 분들과 교감을 하게 된다. 그것은 교감에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일을 일으키고 벌이는 선하고 강한 영향력의 확장이 되고 있다.


부피와 밀도가 커지면 중력이 생긴다.

글도 그와 같다. 내 느낌, 생각, 사색이 하나 둘 쌓이고 그 밀도가 높아지면 중력의 세기가 커진다. 그 중력은 많은 것들을 끌어당긴다. 내게 있어 그것은 수많은 '기회'다. 위에서 말한 출간이나 같은 뜻을 가진 사람. 강연과 경제적 파이프라인까지.


그러나 나는 초심과 본질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내가 끌어당기고 싶은 건, (앞서 열거한 것들도 중요하지만) 바로 다름 아닌 '내 자아'다. '나'는 '나'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다. '나'는 '나'에게서 언제든 멀어질 수 있다.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태어나 눈 뜨면서부터 뭣도 모르고 앞을 향해 달려왔는데, 정작 '나'는 없다는 걸 깨달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아와의 거리감은 측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항상 챙겨야 한다. 중력을 활용해서라도 말이다.


글 하나는 초라하지만, 그것이 쌓이면 특별해지는 마법.

나는 이것이 글쓰기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글쓰기는 글을 재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글쓰기는 잘 쓰고 못쓰고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내어 놓으라고, 그저 써 내려가라고, 그저 표현하라고 종용한다. 글은 잘 써야 한다는 관념은 남의 눈치를 보는 나에게로부터다.


글도 없이 책을 내려하거나.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글을 쓰려한다거나.

남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내부 검열관에 휘둘리고 있다면.


그저 글을 하나 둘 모아 가 보면 좋겠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그저 내 느낌과 생각 그리고 내 역사를 하나 둘 모아 간다는 마음으로.

그 이후의 마법은 쌓인 글이 알아서 부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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