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써서 붙잡아 두어야 한다. 하루하루 차곡차곡.
난 어려서부터 진득한 사람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
아니, 열망이라 해도 좋다.
나는 그와 반대였기 때문이다.
충동적이고 즉흥적이고 감정적이고 인내하지 못하고 조급해했다.
내가 생각하는 '진득한 사람들'이란 '자기 삶의 목적을 알고 목표를 향해 앞뒤 안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 꾸준함으로 무장한 매일매일을 의미 있게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진득한 사람에 대한 열등감 혹은 열망"
어렸을 적 나에게 그러한 사람의 대표적인 표본은 고시 공부를 해서 성공한 사람들 이었다. 남과의 경쟁은 물론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가장 무서운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정서 깊은 곳에 머금은 채 하루하루 진득이 공부해 나아가는 그 사람들은 나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다. 내가 그리 못했기 때문에,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물론, 그래서 사회도 그들을 인정해주고 경제적으로 보상해 주는 시스템을 구비해 놓았다.
한 자리에 앉아 책을 정독하거나 다독하는 사람. 자기만의 신념으로 남 눈치 안 보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꾸준함으로 독학하여 외국어를 마스터하는 사람 등. 내가 당최 할 수 없는 영역들을 해낸 그들을 미울 정도로 열망했다.
무엇보다 하루하루 '일기'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난 그렇게 질투심이 났었다. TV 등에 나와서 자신이 써 온 수 백 권의 일기장을 늘어놓는 사람을 보며, 작심을 하고는 삼일을 넘기지 못했다.
진득한 사람, 그리고 하루하루 일기를 써 나가며 그 기록을 쌓는 사람에 대한 열망이 그토록 컸던 이유는, 난 그 진득함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내 천성이 그러하지 못한데, 그 진득함의 힘을 깨달아 알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괴로움이었다.
신의 장난이며 농간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못난 모습 그대로"
사람은 자고로 뻔뻔하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진득함에 대한 열망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살지만,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을 부정만 하면 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뻔뻔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뻔뻔하다 못해, 이제는 진득함의 반대되는 것들을 제법 활용할 줄도 안다.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것'은 새로운 생각과 창의성을 유발하고, '감정'은 잘 다스려 '감성'으로 일하고, '조급함'은 적극성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한다.
진득한 사람들이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자신의 삶을 미리 준비한 사람들이라면, 나는 그러지는 못했지만 닥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나의 단점마저 장점으로 승화하여 하루하루 몸소 이겨내고, 또 때로는 즐기면서 살고 있다.
못난 모습 그대로. 그렇게.
깨고 알아 삶을 깨닫고 있다.
"또다시 진득함에 대한 열망"
이렇게 못난 모습을 부정만 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승화시키다 보니, '진득함'에 대한 열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분명 내가 생각한 그 수준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나에게 맞는 '진득함'을 개발해내어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싶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난 하루하루 일기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내가 무슨 일인들 할 수 있을까...라는 자책을 무의식 속에서 항상 해왔다. 하루하루 일기 쓰는 것이 내게는 '진득함'의 최소한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진득함'의 열망에 빛을 쏘여 꿈틀대게 한 건 다름 아닌 닳고 닳은 오래된 수첩이었다.
20년이 조금 안 된 그 수첩엔 내가 군대에서 끄적거린 그 당시 존재의 흔적이 생생했다.
대한민국 육군의 스피노자였던가. 아니면 사랑을 노래하는 로미오였던가. 노래하는 음악가였는가. 또는 세상 만물에서 영감을 얻어 글을 쓰는 시인이었는가. 이 모든 사람들이 그 수첩 안에 있었다.
정말 내가 썼을까...라는 의심에 의심을 하며 아무리 읽어봐도 필체는 내 것이요, 읽을수록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과 다름없는 것으로 보아 내 것들임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제대 후에도 일기까지는 아니어도 'Wish Note'를 써 왔던 게 기억이 났다. 말 그대로 원하는 것들을 '뻔뻔하게'적어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반복해서 적은 노트였다. 놀랍고 재미있는 건, 거기에 있는 소망들의 80%는 이미 모두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
즉, 나도 글을 써왔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글재주는 없어도, 글 쓰기는 나의 미래!"
난 글재주가 뛰어난 편이 아니다. 아니 없다고 표현함이 맞다. 물론, 많이 쓰다 보면 늘 거라고 믿는다. 그 수준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다.
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도 아니다. '글 쓰기는 나의 미래'라고 말하기에 여간 부끄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난 '글 쓰기는 나의 미래'라고 규정하고 싶어 졌다. '진득함'에 열망이 있었으나 행하지 못했던 후회를, '글쓰기'를 통해 실천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다시, '글쓰기'를 통해서 나도 '진득함'을 만들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직장인으로서, 삶의 희로애락의 축소판이라는 조직에서 담금질당하는 나는.
지금의 조직에서 승승장구하여 여러 후배에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강의'를 하는 것을 미래의 비전으로 삼고 있다.
내가 깨달아 알게 된 것들을 멘토링 노트로 만들어 공유하고, 또 내가 있는 영역 외의 것들에 대해서도 도전을 하고자 한다. 작사는 물론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문화에 대한 것에도.
그리고 그 결론은 '글쓰기'로 귀결된다.
마음에 담아 결심하고 잊혀간 '진득함'이, 과거를 돌아보면 헤아릴 수가 없다.
그 '진득함'을 잡아 두고, 또 실천할 수 있는 그것이 곧 '글쓰기'다. 지금 내게는.
글로 써서 붙잡아 두어야 한다.
하루하루 차곡차곡. 어쩌면 매일이 아니더라도 그저 진득하게.
진득한 하루하루가 오늘을, 그리고 내일과 미래를 만들어간다고 믿는 나이기에.
글재주가 없어도.
대단한 끄적거림은 아니더라도.
전도유망한 작가가 최종 목적이 아니라도.
스스로 부끄러울 정도의 글이라도.
그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또다시 깊은숨을 들이켜 다시금 내뱉어 본다.